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86)

6부 4장 귀양

정충신의 편지는 이어졌다.

-신은 김대건이 휴대한 국서 가운데 몇 대목을 부드럽게 고쳐서 잘 꾸미고자 합니다. 황금 이외의 토산(土産)은 그들의 뜻에 따라 주어도 좋겠다고 사료되옵니다. 뿐만아니라 적들의 회답을 받아본 다음에 화친을 끊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옛날에 요나라와 송나라 형세를 비교한다면 송의 세력은 크고 요의 세력은 약하였으나 오히려 송이 요에게 폐백을 더 보낸 일이 있었나이다. 그때 한기(韓琦)와 부필(富弼) 두 장수가 이런 의논을 주장하여 국가를 안정시켰는데 후세에 이들을 잘못했다고 비난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물며 오늘날 우리나라 형편으로는 이와같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이해관계를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일년간 국방예산은 후금국에 보내는 예단과 비교한다면 당장 몇 백 배 더 세워야 할 것입니다.

신득연 차사 이후 이곳 평안도민들이 앞다투어 호소하기를, 호구 수에 따라 삼베를 거출하여 일만 필을 보충한다고 하고 있으나 백성들의 정경이 매우 애처럽고 불쌍합니다. 신 등은 김대건을 잠시 의주에 머물러 있게 하고 조정의 분부를 기다리고자 합니다. 지금 조정에서 절화(絶和)만을 앞세운다면 김대건을 이렇게 빨리 보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신 임의로 사신을 머물러 있게 한 죄 백번 죽어 마땅합니다. 이는 외직을 맡은 신하로서 감히 논의할 바 아니나 국가의 안위가 경각에 달린 까닭에 어찌 마음에 있는 소견을 말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대저 바른 말을 강하게 하면 다칠 일이 따르게 마련인데, 다른 일은 후회할 수 있지만 이 일만은 후회할 수 없음을 혜량 바라옵니다.

1633년 2월 12일, 살을 에는 듯한 북풍을 맞으며 정충신은 체찰사 김시양과 함께 길을 떠났다. 김시양과 연명 상소해 파발을 띄운 뒤 상감의 처분을 기다리기 위해 평양으로 향한 것이다. 숙천에 이를 때가지 두 사람은 말이 없었으나 김시양이 애처러워 정충신이 입을 열었다. 그를 끌어들인 것이 너무도 미안했다.

“가도 상륙작전 때 며칠 밤 태풍과 큰 비에도 군선의 돛대가 무사했던 것은 사또의 지극한 염려 덕분이었습니다. 태풍이 사라진 뒤라도 음산한 구름이 하늘 가득히 머물러 개일 것같지 않으니 두려운 마음 뿐이었는데, 체찰사의 각별한 도움이 있었습니다. 황해감사의 보고에 의하면 호남지방의 배가 지난 초사일 말도에서 바람을 타고 떠났는데 오후에 역풍을 만나 많이 조난당했고, 나머지는 연평도로 피항했는데, 팔천칠백 명의 군병을 먹일 식량이 동이 나는데 체찰깨서 군량 수송선을 보내 도왔다고 하더이다. 관향사가 적에게 잡혀서 주관할 사람이 없었고, 일마다 잘못되니 민망하기 그지없었는데 이렇게 도와주어서 위기를 면했습니다.”

이런 인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장계에 연서명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데는 부족한 말이었다.

“내가 다 한 것은 아닙니다만, 정 공께서 워낙에 인격자라서...”

평양에 당도해 조보(朝報:조정의 소식을 알리는 관보)를 받아보니 조정에서 난리가 나 있었다. 상감 인조가 정충신의 장계를 받아보고 진노한 것이다.

“정충신과 김시양이 이 모양이면 군인으로서 자기 본분을 잃을까 두렵다. 저희들 마음대로 나라의 사신을 머물게 하고, 조정을 지휘하려 하니 이런 일은 옛날부터 없었던 일이다. 이들의 목을 당장 베어 여러 사람에게 경계하는 본을 삼지 않는다면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지 못할 것이다. 정충신 김시양을 효수하여 백성들에게 경계를 삼도록 하되, 그것이 타당한지 아닌지를 급히 의논하라.”

그 어명은 형식상 회의를 하되 실질적으로는 목을 치라는 엄명이었다. 명을 받고 비변사에서 긴급 중신회의를 열었다. 중신들은 정충신의 장계를 보고 방방 뛰었다.

“이런 개새끼가 역모를 꾸미다니, 그것도 우리를 간신배로 몰아서 말이다. 우리가 ‘겉으로만 번지르하게 말하여 큰 지위나 차지하려는 무리들’이라고? 또 ‘바른 말을 강하게 하면 다칠 일이 따르게 마련’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감을 모시기 때문에 고변한다’고? 지만 바른 말 하고, 지만 정의파인가? 지만 영웅이냐고? 이런 자는 두 번 다시 생각할 것 없소!”

“맞소. 정충신 이 자는 후금의 간자임에 틀림없소. 한때 후금의 다이샨 패륵과 친구 사이라고 으스대더니 끝까지 친금 대오에 섰소. 후금이 요구하는 세폐를 그대로 주고 싹싹 빌라고 하는데, 양반의 나라가 금수같은 오랑캐에게 언제부터 알랑방구 뀌고 살았소? 개망신이오!”

“당장 목을 잘라 시장통에 내걸어야 하겠소.”

이때 듣고만 있던 최명길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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