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사면문제와 김대중 전 대통령
-용서와 역사바로잡기의 경계선-
최영태(전남대 사학과 명예교수·역사학)

5·18 광주항쟁 40주기를 맞이했다. 한국의 민주화를 앞당기게 만든 5·18 광주항쟁은 궁극적으로 성공한 사건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40주년 기념행사를 축제적 분위기에서 치러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5·18의 상처가 여전히 진행형이고, 진실규명이 아직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광주시민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아쉬움과 분노가 서려 있다.

특히 전두환의 최근 언행처럼 1980년 광주 학살자들이 아직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진실규명을 방해하고 있는 점이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두환 등의 사면· 복권에 동의한 것은 잘못이었다는 원망 섞인 이야기들도 나오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해야 옳은가?

주지하다시피 1997년 12월 18일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전두환·노태우의 사면·복권문제가 현안으로 대두되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영삼은 자신의 퇴임 전 두 사람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국민 여론은 찬·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게다가 대통령 당선인은 전두환이 사형을 시키려 했던 김대중 바로 그 사람이었다.

국민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김대중 당선자에게 쏠렸다. 김대중 당선자가 사면·복권에 동의하면 광주시민들을 비롯하여 민주 진영에서 비난이 쇄도할 게 뻔했다. 반면 사면·복권에 반대할 경우 보수 진영에서는 김대중 당선자가 본격적으로 정치보복에 나섰다고 비난할 것이 분명했다. 결과적으로 김대중 당선자는 어떤 선택을 하든 일정한 비판을 받아야 할 운명에 처해 있었다.

김대중 당선자는 전두환·노태우의 사면·복권에 동의하였고, 전두환·노태우는 12월 22일 감옥에서 풀려났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복권은 앞으로 더 이상의 정치보복이나 지역적 대립은 없어야 한다는 김대중 당선자의 염원이 담긴 조치였다. 그는 1980년 사형선고를 받고 법정에서 최후 진술을 하면서 언젠가 민주주의가 회복될 것이라고 전제하고 “내가 죽더라도 다시는 이러한 정치보복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싶다”라고 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1997년 12월 그는 그 유언 같은 약속을 실행에 옮겼다. 물론 당선되자마자 그를 열렬히 지지한 사람들의 뜻과 배치되는 결정을 해야 하는 그의 마음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이 전두환·노태우의 사면·복권에 동의한 것은 최초의 정권교체에 따른 보수층의 불안감 해소와 IMF 극복을 위한 국민통합이라는 정치적 목표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인간적인 용서였다. 이 점은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 두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시 전직 대통령을 청와대에 초청하면서 전두환·노태우도 빠짐없이 초청했고 그들을 전직 대통령으로서 깍듯이 예우했다. 또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의 증언에 따르면 이희호 여사는 퇴임 후에도 전두환의 생일이나 명절 때는 항상 선물을 보내주었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의 용서가 결코 일회성 선심 행위가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전두환은 사면·복권 후 지금까지 한 번도 12·12 쿠데타나 광주학살 행위에 대해 진심은커녕 형식적으로도 사과한 적이 없다. 오히려 전두환은 5·18 때 북한군이 내려와 ‘광주사태’를 사주 혹은 격화시켰다고 했다. 한마디로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용서와 화해철학을 철저히 악용하였다.

지도자의 ‘정치적 관용’이 반민족·반민주세력의 뿌리를 온존시킴으로써 이들이 다시 민족정기와 사회정의를 짓밟고, 정의와 진리의 가치를 전도시키게 된다면 그것은 관용의 문제를 넘어서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공인이었고 민주 진영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공인의 관용 특히, 최고 지도자의 분별없는 관용은 자칫 역사와 현실의 진위(眞僞), 정사(正邪)를 뒤바꿀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김대중 대통령 개인의 용서와 관용 정신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그가 전두환을 사면·복권 시킨 차원을 넘어서 그를 전직 대통령으로 깍듯이 예우한 행위는 잘못된 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용서는 1997년 12월 말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사면·복권에 대한 동의한 것 한 번으로 끝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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