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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87)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87)

6부 4장 귀양

최명신이 나직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충신과 김시양은 큰 죄를 지었으니 목을 베어 저자거리에 내걸어도 무방하다는 말은 일응 수긍할만합니다. 다만 전쟁 시에 싸움터에서 적에게 기밀을 제공하여 아군 손실을 막대하게 입히는 등 군율을 어긴 것과는 사안이 다른 일 같소이다. 그러니 우선 잡아다가 국문한 다음, 그 죄를 규정합시다.”

“그런 법이 어디 있소? 국서를 변조한 혐의가 중죄가 아니냐고요?”

금방 도원수직에 오른 김자점이 반발했다. 김자점의 위력은 대단했다. 문과 급제 출신이 아니라 음보(공신 또는 현직 당상관의 자제로 과거에 의하지 않고 등용된 음관) 출신인 그는 인목대비와 사돈인 이귀의 지지를 받고 출세한 사람이었다. 권력 추구, 궁중과의 유착 관계로 권력기반이 든든해 그를 거슬리면 누구도 살았다 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모두 눈치를 살피는 형편이었다.

“그의 공훈을 생각하면 끌고 와서 진위를 살펴서 치죄해도 늦지 않소.”

최명길도 지지 않고 맞섰다.

“이조판서 그대는 왜 정충신 무리에게 호의적이오? 국서를 변조해 나라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상감의 권위를 밟겠다는 오만은 동서고금에 없소. 과연 그런 장수가 세상 천지에 있소?”

한 원로 중신이 김자점이 듣기 좋게 거들었다. 그는 어느 줄에 서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대세는 정충신을 죽이자는 방향으로 기울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왕이 입을 열었다.

“저들 오랑캐가 우리 조선을 침략할 계획을 가지고 쳐들어온다고 하면 백성들은 내가 침략할 틈을 만들었다고 나에게 허물을 돌릴 것이 첫째로 불행한 일이요, 사람마다 두려워하여 미리 겁을 먹고 사가기 죽으니 이것이 두 번째로 불행한 일이며, 인심이 사나워져서 백성들이 조정을 믿지 않으니 세 번째 불행한 일이다. 이렇게 세가지 불행한 일이 올 것을 알면서 그릇되게 행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후금국에 보내는 국서를 다시 고쳐서 보내어 저들 오랑캐로 하여금 노여움을 일으키는 우환거리가 없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줏대 없이 말하는 것에 중신들은 한동안 어리둥절했으나 김자점이 변신하자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았다.

“상감마마의 어지신 마음이 가이없이 높기만 하옵니다. 마마의 분부대로 따르겠나이다.”

그리고 일제히 엎드려 절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러나 김자점이 말한 체면이 있는지라 한마디 했다.

“그러나 국법을 어긴 이상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지엄하신 상감마마의 명을 어겼으니 당연히 벌을 내려야 합니다. 대신 유배형과 함께 위리안치(圍籬安置:유배소에서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가시 울타리를 쳐 고립시키는 형)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라.”

금부도사가 득달같이 평양성에 입성한 것은 그로부터 이틀 후였다.

“역적 충신은 체찰사 시양과 함께 왕명을 받들라.”

정충신은 수형(囚刑) 호송거(護送車)를 타고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무과 급제해 일선 군교로 있던 아들 빙이 왕명을 받고 금부도사를 따라 대동강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가는 아비 앞에 이르러 무릎 꿇고 절하며 흐느껴 울었다.

“아버님, 무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건강만 유지하시면 솟아날 구멍이 있을 수 있으니 제발 몸을 잘 보살피소서.”

나이 육십을 바라보는 아비가 감옥살이와 곤장을 견딜 수 있을까...

2월20일 아침 한양에 도착하자 정충신은 의금부의 옥에 갇혔다. 잡범처럼 사정없이 두둘겨 맞는 매는 면했으나 한평 정도 되는 감옥이 습내나고 바닥이 허접한 물기로 질척이는 흙바닥이어서 견딜 수 없었다. 바닥의 짚이 젖어있는데 빈대와 이가 득시글거렸다.

의금부 옥에 갇힌 이레만에 정충신은 모든 관직이 삭탈되고 중도부처(中途付處:벼슬아치에게 어느 곳에 머물러 있는 형벌) 형이 내려졌다. 제주도나 흑산도는 물론 함경도 산골짜기 눈이 쌓인 곳에 쳐박힐 수 있었다. 최명길이 급히 움직였다. 노선을 같이하는 정충신이 제거되면 자신의 손발도 잘린 것이나 다름없다. 어찌어찌 손을 쓴 결과 정충신은 충청도 당진 유배형으로 결정되었다. 김시양은 강원도 산골인 영월 유배형이 떨어졌다.

정충신은 금오문(金吾門:의금부 정문) 앞에서 김시양을 만나 작별인사를 고했다.

“미안하게 됐소이다. 부디 옥체가 상하지 않으기를...”

“이러다 나라가 큰 변을 당할 것이 두렵소. 후금국이 가만 있겠소?”

몇 년 후 닥칠 병자호란을 김시양은 내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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