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가 김종철

이민철((사)광주마당 이사장)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이 6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김종철을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사상가라고 부르고 싶다. 사상가는 상투적이지 않는 사람인데, 선생은 언제 만나도 뻔한 이야기가 거의 없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각도에서 현실을 분석하고 눈이 번쩍 열리는 대안을 내놓았다. 타고난 감수성도 있겠지만 성실한 독서와 사색, 대화의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빈소에 앉아 함께 한 장면을 떠올려보았다. 선생은 ‘교만한, 오만한, 불경스러운’ 행위들에 특별히 예민했던 것 같다. 빈소에서 장흥에서 온 분들에게 들은 이야기다. 순천 강연회에서 ‘선생님은 세상에 절망하거나 좌절할 때 어떻게 하십니까?’라고 물었는데, 선생은 절망과 좌절도 오만한 생각이 아닐지 반문했다고 한다. 명진스님은 추도사에서 자신은 수행자이지만 세속적인 사람이고, 김종철은 세속에 있지만 자신보다 수행자 같은 사람이었다고 추억했는데, 선생은 제도화된 종교로 설명할 수 없는 수행의 길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선생과 가깝게 지낸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선생은 진짜와 가짜를 기가 막히게 감지한다는 말이다. 자만에 빠져있는, 그러니까 자기가 가진 지위, 재산, 지식만 믿고 난체 하는 사람들은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모든 문제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발언하는 유명인들에게는 당연히 경계를 보냈다.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소비되면서 자만에 빠지면 선을 넘게 되니 책임 있는 사람들은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해했다.

김종철 사상을 집약한 책으로 생태사상론집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가 있다. 선생의 강연, 대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존엄한 인간이, 자존심 있는 사람이, 품위 있는 인간이’라고 기억한다. 인간이 존엄과 품위를 지키며 살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존엄과 품위를 가진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묻고 세간의 일들에 발언했다. 언젠가 대화모임에서 우정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할 정도로 ‘우정과 환대에 기초한 삶과 문명’을 추구했다. 자신이 존엄과 품위를 지키고 살려면 이웃의 존엄과 품위를 지켜주어야 한다.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와 사회제도는 그 범위와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 그 선을 넘어서면 교만하고 불경한 문명으로 폭주한다. ‘서구식 근대’의 논의에 따른 세계와 우리들 삶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이반 일리치 읽기 모임 친구들에게 남긴 글이 가슴에 깊이 남는다. ‘사람들 다 같아요. 다 어린애입니다. 벌거벗은 자기 마음 안 나타내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그러다가는 병 걸립니다. 솔직히 자기를 표현하면서 살아가는 게 제일 좋아요’. 남들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포장하지 말고 솔직하게 후회 없이 살면 좋겠다는 말씀이다. 빈소에서 조촐하게 치른 추도식에서 일리치 읽기 모임 회원 한 분이 글을 읽어 내려갈 때 뭉클했던 것은 선생이 친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음을 느껴서다.

나는 활동가로서 세상을 해석하고 대안을 설계하고 운동을 기획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그런 나에게 선생은 최고의 사부였다. 인간다운 삶 뿐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고 바꾸는 길 위에서도 그랬다. 선생은 인간과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대안을 탐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현을 위해 판을 만들고 활동가로 현장을 뛰었다.

대표적인 기획이 이제는 주류 담론이 된 기본소득이다. 처음 선생이 한국 사회에 기본소득을 제안했을 때, 현실성이 없는 너무나 이상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선생은 의외로 우파가 적극적일 가능성이 있다며 가능성을 높게 봤다. 전국 각지를 열정적으로 돌며 기본소득이 대안이라고 설파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선생은 평생을 존엄하고 품위 있는 인간으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분투했고, 시적 직관과 유머와 우정 안에서 존재했다. 생각이 길을 헤매던 젊은 시절, 하늘의 도움으로 김종철 사상을 만날 수 있었음에 깊이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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