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이계홍 역사소설 깃발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21)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21)

6부 5장 귀향

일부 기록에는 ‘경렬공 정지 장군의 9대손 정충신 장군도 함께 묘역에 묻혔다’고 되어 있으나 정충신 부친 정윤이 묻힌 것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대신 1644년(인조 22) 정지 장군의 유훈을 기리기 위해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명동에 경렬사를 세워 향사(享祀:제사)한 때로부터 75년이 지난 1719년(숙종 45년) 충무공 정충신도 이곳에 함께 배향했다. 경렬사에는 설강 유사, 송설정 고중영, 구성 전상의, 송암 유평, 고중영의 아들 구암 고경조, 시은 유성익 등 8현도 모셔졌다고 유허비에 기록되어 있다.

정충신은 종중 산 선영에서 시제를 모신 뒤 정지 장군 묘의 석축을 개수했다. 그런데 갑자기 광주목사가 찾아왔다.

“이렇게 산 일만 하실 것이 아니라 모처럼만에 고향을 찾으셨으니 경치 구경도 하셔야지요. 제가 나리를 모시고자 합니다. 둘러보고 싶으신 곳을 말씀하십시오.”

정충신은 대답 대신 죽곡(오늘의 광주 망월동) 선영의 산들을 감회어린 시선으로 둘러보았다.

“고향을 떠날 때 묘역에 심어놓은 나무가 어느덧 아름드리 거목이 되었구려. 무덤에 묵은 풀이 우거져 바라보자니 한갓 슬픔 뿐이오이다. 묘역을 떠날 수 없는 간절한 생각이 드는군요.”

그는 너무 늦게 고향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왔다고 하지만 이제는 나그네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긴 나이 열여섯에 고향을 떠나 쉰여덟에 돌아왔으니 참으로 긴 세월동안 객지로떠돌았다. 그것도 산 설고, 물 설고, 기후마저 혹독한 북방 변경에서만 내리 직업군인으로 있다가 돌아왔다. 돌아보니 회한과 함께 어떤 슬픔같은 것이 가슴에 가득 차올랐다.

“그러니 고향의 산천경개를 둘러보아야지요. 가시지요.”

정충신은 광주목사를 따라 화순을 거쳐 구례로 나가서 두류산(지리산)을 둘러보고 섬진강에 이르렀다. 그는 서른세 살 때 보을하진 첨사가 되어 3년 임기를 채운 뒤 체임(遞任)되자 광양의 섬진강 서쪽에 터를 잡고 은둔생활을 계획한 적이 있었다. 조정의 당쟁과 이전투구에 환멸을 느끼고 낙향할 요량으로 섬진강변을 찾아 집터를 닦았는데, 갑자기 포이만호로 발령을 받아 부랴부랴 임지로 떠났었다. 그 옛 집터는 잡초와 잡목이 우거져 집터인지 숲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구례 저탄에 이르러 말에게 풀을 먹이고 곡성의 칠림(漆林)을 거쳐 창평을 찾았다. 갈 때마다 외가와 처가 등 조상들의 묘를 찾아 참배했다.

“왜 이토록 선영만 찾습니까. 기방(妓房)을 주선해 놓았는데, 흥이 안나시면 내가 고약합니다. 노랫가락에 젖어보셔야지요.”

광주목사가 넌지시 말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웃었다. 외지에서 군대생활과 귀양살이를 하느라고 조상의 묘를 돌아보지 못했고, 형제자매, 일가붙이들과도 떨어져 살았으니 어느덧 생명부지의 사람이 되었다. 알만한 사람은 그 사이 세상을 떠났다. 옛 친구들도 열명 중 예닐곱은 이 세상에 없다. 그런 생각에 잠기니 주색을 염두에 둘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그런 것에는 초연했지만 고향을 찾으니 더욱 가슴이 애달파지는 것이다.

“너무 늦게 와서 마음이 아프오이다. 목사는 나를 접대하기보다 어서 돌아가 직무에 충실하시오. 나 혼자 천천히 고향산천을 돌아보겠습니다.”

“그럴 수야 없지요. 모시겠습니다.”

목사는 한사코 수행을 고집했다. 가는 곳마다 어떻게 연락이 닿았는지 광양군수, 하동군수, 구레군수, 담양군수, 순천군수가 나와 술자리를 마련했으나 그는 사양했다. 고향산천을 주유(周遊)하다 보니 조급한 마음이 생겨 광주로 돌아왔다. 그 길로 중시조 묘를 수축(修築)하기 위해 집안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정사연 정대남 정척 정무 등이 참여해 일을 도왔다.

해가 저물어 갑술년(1634)이 되었다. 아들 빙으로부터 급히 상경하라는 서찰이 왔다. 말을 몰아 길을 떠나는데 고을마다 사람들이 나와 마지막 인사라도 하는 듯이 하직인사를 했다. 2월 20일 한강의 동작나루를 건너 밤 늦게 한양집에 당도하자 이조판서 최명길이 집으로 찾아왔다.

“왜 이제 오시는 겁니까. 내일 아침 일찍 대궐로 들어오시오.”

“무슨 일이 있었소이까?”

“무슨 일이 있으나마나 낙향해있으면 어쩌자는 것입니까. 좌우지간 내일 아침 조반을 들자마자 입궐하시오.”

다음날 대궐로 나아가 상감에게 사은숙배(謝恩肅拜)하고, 몸을 깊숙이 엎드리자 임금이 뚫어지게 정충신을 내려다보았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명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