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어와 비정규직
최형천(㈜KFC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어느 날 길을 가던 장자가 마차바퀴 자국 웅덩이에서 겨우 숨 쉬고 있는 잉어를 발견하였습니다. 잉어는 “한 국자의 물로 저를 살릴 수 없겠습니까?”하고 애원하였습니다. 장자는 “내가 출타 중이니 오면서 큰 강물을 끌어다 주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잉어는 화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지금 나를 살릴 수 있는 한 국자의 물입니다. 만일 그것이 당신 대답의 전부라면 다음에는 건어물 진열대에서 나를 찾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장자 외물(外物)편에 나오는 우화입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논란거리입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비정규직 사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간접당사자인 정규직사원 그리고 취준생과 정치권의 꽹과리 소리만 높습니다. 특히 비정규직의 요구를 차별과 혐오의 용어로 비난하는 도를 지나친 언사도 행해집니다. 고용절벽에 가로막힌 청년들의 박탈감은 이해되지만, 이번 정규직화 대상자인 보안검색 노동자와 청년들이 준비하는 사무직은 업무분야가 다르므로 역차별이라 주장하는 것은 과도한 우려로 보입니다. 지금 속이 타는 비정규직 사원들이 하고 싶은 말을 우화에서 나오는 잉어가 대신하지 않았을까요?

우선 비정규직 제도를 살펴보겠습니다. 한 직장에서 처우나 신분에서 차별하는 인사제도가 작동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는가요? 이걸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노예제도를 허용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어떤 개인 또는 집단의 아픔이나 고통 속에는 역사적인 곡절이 숨겨져 있습니다. 비정규직은 IMF사태의 산물입니다. IMF가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 정리해고와 기업의 구조조정을 요구해 왔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근로자가 생계 수단을 잃었고, 기업들은 합병과 청산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이 허용되었습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실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총 종사자가 1만 1천명을 넘는데 그 중 공사 정규직이 1천500명에 불과합니다. 종사자의 85%이상이 비정규직이라는 것은 극히 비정상적인 조직구조입니다. 평균임금을 비교해 보면 정규직은 9천100만원인 반면 비정규직은 4천만원이며 이는 정규직의 초임도 안 되는 급여액입니다. 비정규직제도는 일반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들이 정규직 노조의 묵인 하에 노동비용 감축의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영리가 주목적이 아닌 공기업은 비정규직을 존치해야할 이유가 없는 조직입니다. 특히 사기업의 모범이 되어야할 공기업이 비정규직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설립취지에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정규직 노조의 입장을 들어보면 공기업은 소위 총액인건비제도를 적용받기 때문에 자신들의 몫이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양입니다. 공사는 외부 용역비로 지출되는 비용을 내부 인건비로 사용하면 부담은 크지 않다고 설명하지만 설득되지 않습니다. 정규직 노조는 협력업체의 채용비리 등을 이유로 들어 급기야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며 비정규직을 적대화 하고 있습니다. 노-노갈등으로 번지는 양상입니다. 노조는 정규직 전환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하지만 비정규직을 방치하는 것이 더 불공정한 것이 아닐까요?

특히 싸움의 대상은 약자인 비정규직 사원이 아닙니다. 오히려 돕고 함께 가야할 동지들입니다. “연대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연대는 반드시 하방연대라야 한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과 연대해야 한다. 왜냐하면 연대는 약한 자의 전술이기 때문이다.”(신영복, <손잡고 더불어>, 2017) 정규직 노조라면 비정규직과 함께 손잡는 것이 진정한 연대입니다. 경험적으로 보아도 상방연대는 결국 힘 있는 위쪽으로 흡수되거나 추종이 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존엄을 다시 중심에 놓는다면 우리는 경제의 우선순위와 사회가 구성원들을 돌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2019 노벨경제학상 수상 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 공저,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어떤 사회제도도 인간을 차별하고 존엄성을 해친다면 그 제도는 존재의 정당성을 잃습니다. 비정규직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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