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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36)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36)

6부 6장 포도대장, 깃발 펄럭이며

정충신은 불현듯 인왕산 안현전투 때의 부장 임경업 생각이 났다. 임경업은 안현에서 이괄의 부대를 섬멸할 때, 정충신 전부대장(前部大將) 휘하의 돌격대장이었다. 용맹과 담력이 대단한 젊은 군교였다. 난을 평정한 후 그 공으로 그는 진무공신 1등에 봉해졌다.

그런데 공신 선정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 반정공신 우두머리인 김류에게 뇌물을 바쳤다가 들통이 나 파직된 것이다. 훗날 복권되어 의주부윤으로 청북방어사를 겸임했으나 그때도 말썽이 생겼다. 의주 인근 백마산성 축성에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조정으로부터 은 1000냥과 비단 100필을 지원받았는데, 이것으로 중국 상인과 밀무역을 하다가 적발된 것이다. 또 청나라 상인과도 밀무역을 했다. 장수가 명과 청 사이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것도 문제고, 이권에 개입한 것 또한 도덕성에 상처를 내는 일이다.

정충신은 임경업을 마땅치 않게 여겼다. 필요에 따라 명군과 내통하고, 또 후금의 상인과 거래를 하는 것은 그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고, 정체성을 모호하게 할 수 있다. 명과 청은 물론 조선 조정으로부터도 의심을 사게 할 수 있다. 3자가 모두 불신하는 근거가 되니 신의도 의심받게 되는 것이다. 외교든 거래든 그것은 사익보다 국가 이익을 전제로 해야 하는데, 사익 추구로 끝나게 마련이니 더욱 지체가 옹색해진다.

그래서 정충신은 크게 우려했는데, 과연 그는 후일 조정으로 끌려와 문초를 받다가 장살(杖殺)되었다. 가족은 청나라로 압송되어 그의 처는 심양 감옥에서 자결했다. 일찍이 우려했던 것이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형제들과 함께 보여준 담대한 용맹성과 혁혁한 무공은 소소한 이권개입에 묻혀버린 셈이었다.

항간에선 임경업이 천얼 출신이라는 모함이 있었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특히 배경이 없으면 종당에는 당하는 것이 하나의 수순처럼 여겨지는 풍토였으니, 배경없는 것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내랙없이 당해버링개 세상 참 엿같습디다요. 소인과 강덕보는 졸지에 외직으로 쫓겨나부렀지요.”

그 말을 듣고 지난 생각으로부터 빠져나온 정충신이 김하필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포졸 치고는 순박해보인 김하필이 눈을 내리깐 채 다시 말했다.

“맨 밑바닥 순라꾼이 되어서 야밤에만 복무하는디, 마침 정충신 포도대장 나리께서 부임해오셨지라우. 그리고 대장 나리를 만나서 요로코롬 사람 대접 받았구만이라우. 대장님을 모시고 함꾼에 내려가얄랑개비요.”

“안된다.” 정충신이 짧게 거부했다. “자리를 지켜라. 현실은 암담해도 성실하게 일하다 보면 희망이 보일 것이다. 그러면 운도 따른다. 누군가 알아주는 이가 있다.”

“이런 세상에 무슨 별 볼 일 있을랍디여. 소인도 지쳤고만이라우.”

“아니다. 비관하지 말아라. 어떤 비관주의도 낙관주의를 이길 수 없다. 사람들은 답답한 나머지 현실보다 불확실한 미래를 선호하지만, 공력을 들이지 않고는 기다리던 미래는 쉽게 오지 않는다. 현재의 단단한 생활이 미래를 담보한다. 어서 귀대하라. 내 또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돌아오면 너를 부를 것이다.”

타일러서 김하필을 나루를 건너게 하는데, 정작 마음은 무거웠다. 그 자신의 현실도 암담한 것이다. 생각이 깊어지나 벌써 노년의 대오에 들었고, 몸은 조금씩 병색이 완연하다.

1634년 11월 18일, 정충신은 진주에 도착해 경상병사로서 병사영에 등청했다. 임진왜란 시. 양대 진주성 싸움으로 진주 일원은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었다. 불에 탄 집, 허물어진 집이 아직 남아있고, 집울 비운 지 오래인 듯 여러 집들의 지붕에는 마른 잡초가 우거져 찬바람을 맞고 스적거리고 있었다.

“진주성 싸움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장수와 병사, 남녀 백성들의 묘에 제사부터 지내겠다. 정성들여 제물을 준비하거리.”

제물이 준비되자 정충신은 진주 외곽 빈 들판으로 나갔다. 흙바람이 이는 야산 기슭의 공동묘지는 더욱 쓸쓸했다. 희생된 영령들에 대한 예우가 너무 보잘것없었다. 정충신은 누군가 말했던 것을 속으로 웅얼거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겄다. 잘못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 민족은 더욱 미래가 없겄다. 필시 노예로 전락한다고 하였겄다....”

묘역 중심부로 이동하자 한 젊은이가 달려와 정충신 앞에 대령했다.

“소인 인사 드리옵니다. 소인은 최자 경자 운자의 손자이옵니다.”

최경운이라. 정충신은 그 이름을 당장에 알아차리고 청년의 두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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