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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42)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42)

6부 7장 병자호란 전야

“내 목을 자르겠다고? 문상 온 손님을?”

“잘 모르겠습니다만, 북방 야만족이라고 얕보는 것이지요. 거기엔 모처럼 백성들에게 웃음거리를 제공하자는 뜻도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탐관오리가 발호하고, 백성들 고혈을 짜내니 사나워진 민심을 돌리려고 군중 속에 야유하고 조롱하는 간자 무리들을 심어놓은 것 같습니다. 민심의 흐름을 다른 데로 돌리는 방책이지요.”

“우리를 이용한단 말인가?”

“물론 명분은 있지요. 정묘호란 때 너무했다는 것이고, 그것을 복수하겠다는 뜻도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사이군(不事二君:한 사람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함)의 의를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명나라를 주군으로 모시는 일을 저버릴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명나라 사신은 칙사 대접을 하고, 우린 거지발싸개 쯤으로 여겼다는 말이군? 좋다, 씨발놈들.”

성질대로라면 당장 요절을 내고 싶지만 여기는 엄연히 조선 땅이고, 자기가 데려온 사절단은 용맹한 군인이 아니라 예쁘고 곱상한 사람들이다. 삼배구고두를 마치자마자 용골대는 휘하 사절단에게 명했다.

“이 길로 모두 철수한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청의 사절단이 제물을 수습하는둥마는둥 하고, 가져온 그릇도 내동댕이치며 북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황망히 떠나는 그들을 보고 군중들이 전쟁에 승리한 것마냥 그들을 뒤따르며 소리지르고 웃음을 날렸다. 서대문과 모화관, 안현고개에 있는 구경꾼들이 청나라 사절단이 몹쓸 짓을 하고 도망을 가고, 백성들이 뒤쫓는 줄 알고 “붙잡아라. 붙잡아라” 하고 소리질렀다. 용골대 일행을 뒤쫓던 젊은이들은 돌팔매질을 하고, 장대를 들고 후미 대오를 휘어 갈기기까지 하였다.

백성들의 소요와 용골대 일행이 허겁지겁 도망간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자 비국(備局:군국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던 관아)에서는 통사 박난영을 벽제관에 보내 용골대에게 공교로운 일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명할 것이 따로 있지, 금천교에서 벽제관까지는 오십리 길이다. 하룻길이 되는 그때까지 개판을 쳐놓고 해명이라니, 병주고 약주는 것인가? 오히려 용골대를 더 약올리는 일이 되어버렸다.

“개새끼들, 두고 보자!”

용골대는 화를 내고 내처 북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달아났다고 하자 조정에서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춤판이 벌어질 정도로 기쁨에 젖었다. 병조에서는 다음과 같이 팔도에 하교를 내렸다.

-오랑캐가 더욱 창궐하고 방자하여 인열왕후 조상(弔喪)을 핑계로 감히 천자 지위를 참칭하였으므로 조서(弔書:조문의 뜻이 담긴 편지)를 받지 않았더니 오랑캐의 사자가 굴복하고 돌아갔다. 야만인이 감히 대국의 흉내를 내며 천자의 조서를 가지고 장난하는 것을 용서치 않았도다. 백성들은 가일층 생업에 충실하라.

이와 아울러 비변사에서는 평안감사에게 “후금국과 절화(絶和:교류를 끊다)하겠으니 대비하라”고 하명했다. 후금국이 ‘대청’으로 ‘개국’했음에도 조선의 조정은 인정치 않고 여전히 ‘후금국’이란 국명을 사용했다. 1636년 3월, 정사공신 1등인 승평부원군 김류가 상소했다.

-예로부터 북방 오랑캐들과 화친하여 10년을 간 일이 없습니다. 오늘날 적들이 별안간 천자라 참칭하고 우리나라에 차사를 보내왔습니다. 무릇 방자한 태도입니다. 기왕에 오랑캐와 척화(斥和:화친을 배격)하기로 하였다면, 그것들은 도발할 것입니다. 저 무리들이 가만있을 리 없습니다. 침략을 막아야 하는데 어영의 포수와 훈련도감의 포수들을 간추려 뽑고, 남쪽지방 3도 감사나 병사들의 수하에 정예 포수가 있을 것이니, 이들을 합친다면 5천은 될 것입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급히 이들 정병(精兵:우수하고 강한 군사)들을 가려 안주로 들어가 지키게 하되, 때로는 이들을 묶어두기도 하고, 때로는 야습을 감행하는 것이 마땅할까 합니다.

조정에서는 4군영을 별도로 운영 중이었는데, 훈련도감(1593년 창설)은 삼수병(선조 때 조직한 砲手·殺手·射手로 구성된 군사)을 양성하고, 어영청(1623년)은 북벌 담당 기병 조직, 총융청(1624년)은 경기도 일대 수비, 수어청(1624)은 남한산성을 수비했다. 이후 숙종대(1682)에 금위영이 창설되어 한성 수비 기병조직으로 복무해 흔히 5군영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렇게 군사 편제가 이루어졌지만 옥상옥에 중복 편제되고, 지휘관에 따라 능력이 천차만별이어서 팔기군 중심으로 군사 조직이 흥기하는 청나라 군대를 당할 수가 없었다.

이런 때 척화와 절화는 조선이 청나라에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이렇게 나가면 전쟁은 불문가지다. 다급해진 정충신이 급히 최명길을 찾았다. 그런데 최명길은 연금 중이었다. 조정은 물정 모르고 호랑이 코털을 뽑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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