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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44)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44)

6부 7장 병자호란 전야

“중국에 변고가 있는 것은 조정 대신들 때문이오. 무능과 부패가 하늘에 닿았소. 중신들은 닥치는대로 뜯어먹으며 각자도생하고 있소. 이러니 군사들이 ‘요동에 가서 개죽음 당하지 말자’고 노래하지. 왜 이 따위 나라에서 개죽음 당하느냐는 것이오. 투항하거나 도망가자고 힌결같이 말하고 있소. 병란이 일어났는데도 나라 꼴이 이 모양이오. 먹을 것, 입을 것 다 지닌 자들이 털끝 하나 다치는 것 없이 탐욕에 찌들어있는데, 그런 나라를 뭐한다고 따르겠소. 우리 또한 마찬가지요. 적은 내부에 있으니, 바로 이런 적폐들 때문이오. 백성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위해 사니 나라 꼴이 이렇게 되는 것이오이다.”

최명길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으흠, 하고 몇 번 잔기침을 했다. 친한 사이라고 해도 장유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암시였다. 워낙에 난세인지라 벗도 믿을 수가 없는 세상이다. 그러나 정충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국가의 존망이 병자년 올해에 결판나리라 보오.”

“왜란이 난다고 수군대고 있습니다.” 장유가 말했다.

“왜란이 아니오. 각 나라의 국력 상황을 보면 왜국은 오랜 내전과 임진왜란, 정유재란으로 속병이 들었소. 도쿠가와 이에야쓰란 자가 전쟁으로는 나라가 흥기할 수 없다고 보고, 지금 나라의 부강정책을 농업, 공업, 상업, 배 만드는 것으로 바꾸었소. 산업국가로 전환하는 것이오. 그런 세상의 변화를 읽어야 하오.”

“쥐새끼 같은 놈들이라 변신도 빠르게 한다고 보아야겠지요? 우리는 벌써 노국(老國)이 되어서 늙은 소처럼 허덕이고 있는 것이 한탄스럽습니다.” 최명길이 말을 보탰다.

“사실 왜국이 센 것도 아니고, 오랑캐가 치밀한 것도 아니오. 왜국의 선단은 날렵하다고 하나 가벼워서 바람에 쓸려 고꾸라지기 쉽소. 땅개 같은 종들은 육지에서는 덩치 큰 우리에게 쪽도 못쓰오. 북쪽 오랑캐는 덩치는 크나 무식하지요. 우리가 기왕에 조상국의 어른으로 행세하면서 가르치면 순종하는 종들입니다. 그런데 피 터지는 내부 분열과 대결로 저것들한테 빌미를 주고 있소이다.“

“맞소이다.”

“지나치게 종교화된 예학(성리학)이 국가적 동력을 상실하고 있소.”

그것은 자기부정이었지만 정충신은 평소 이런 생각을 했다. 성리학은 본래 철학도 아니고, 정치이념도 아니다. 공자의 유교 중 온화, 선량, 검박, 겸양의 덕인정치에서 가져온 작은 행동 규범이었다. 그런데 예법을 덧칠해 예에 어긋나면 몰상식하고 무식하고, 인륜을 저버린다고 비난하면서 파당을 형성해 보복과 응징의 수단으로 삼는다. 상대방을 심판하기 위한 도덕적 잣대만 될 뿐, 현실과 동떨어진 정치이론인데, 이것을 무기로 지배층을 형성하고, 군림하며 권력을 행사한다. 예법 하나로 생사여탈권까지 쥐니 변할 생각이 없이 이것 하나로 호령하며 호의호식한다. 왜나라는 벌써 양코백이들을 흉내내 귀족 계급에서 사업가로 변신해 눈부신 변화를 모색하고 있고, 큰 배를 만들어 태평양 먼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는 일방 오가사와라, 유구(오키나와) 섬들을 자기 영토로 확장해가고 있다. 이렇게 지배층이 변하면서 사회 변화를 추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은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과도한 성리학 이론으로 경쟁자를 친다. 군신유의, 장유유서 따위의 유교 질서로 오로지 중국만 잘 모시면 된다고 믿는다. 대국의 면허장 하나면 지배층으로 떵떵거리며 살게 되는데, 대신 조선의 농민이나 천민은 철저히 금수 취급을 당한다. 그것이 벌써 조선조 250년을 관통해왔다.



“후금과의 화친을 논하면 오랑캐 세력이라 낙인찍고, 목을 치고, 삼족을 멸하니 무슨 간언을 하겠는가. 하기야 오랑캐와 화친을 논하는 순간 인조반정의 대의명분이 사라지니 극단정책을 펴는 것이겠으나 나라가 살고, 백성이 살고 봐야지, 정책 수정이 무슨 큰 오류라고 하겠는가.”

정충신은 정묘호란의 후유증을 알고 있었다. 강화도 연미정에서 벌어진 항복의식은 치욕적이었다. 흰 말과 검은 소를 잡아 피와 골을 그릇에 담았다. 이것으로 천제(天祭)를 올렸다. 왕이 머리를 조아리는 가운데 신료들은 맹세문을 낭독했다.

“조선은 앞으로 후금을 적대시해서 나쁜 마음을 품으면 이와같이 피와 골이 나오게 된다….”

신료들은 존엄한 제후국 임금(인조)이 동물의 피와 더불어 맹세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변했으나 패자에게는 공허한 반항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오늘날 오랑캐를 정벌하여 명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인조반정을 일으켰으나 다시 그 오랑캐로부터 침략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재차 침략은 두말할 것없이 엄청난 보복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북방의 방어력이 상실된 것이 가장 두렵소. 이괄의 난으로 인하여 북방의 방어력이 대부분 사라졌소. 이괄의 패잔병들은 청나라에 가서 한양으로 이르는 지름길을 알려주는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소. 이들로 인해 청군은 불과 10여일만에 한양을 점령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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