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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국립정신건강센터 연구원의 남도일보 월요아침-사람의 마음을 얻다.
사람의 마음을 얻다.

김은성(국립정신건강센터 소아청소년 연구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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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글쎄요,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이 머물게 한다는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어린 시절 책을 통해서든, 우연한 기회로든 한 번쯤은 들어봤던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을 대할 때마다 필자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은 늘 달랐다. 어렴풋한 기억에 어렸을 적 필자는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했던 것 같고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사춘기에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남의 마음을 얻어서 뭐하나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한창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에는 어렴풋이 ‘맞아.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참 어렵지’ 했던 것 같은데 그로부터 긴 시간이 지나지 않은 지금의 필자는 결국 사람의 마음이란 건 얻을 수 없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내 열과 성의를 다해 진심으로 마음을 주면 그에 상응하는 상대의 마음을 얻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은 내 마음도 몰라주고, 나쁜 사람’, ‘나의 순수한 마음을 짓밟아버렸어. 나 상처받았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정작 내 마음을 주었던 건 상대가 빼앗은 것이 아니라 내가 준 것이다. 내가 좋아 주어놓고 그만큼을 되돌려주지 않았으니 나쁘고 배신이고, 상처라고 하는 것은 상대 입장에서보면 아닌 밤중에 홍두깨인 것이다.

물론, 마음을 주는 사람을 처음부터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나쁜 의도를 지닌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서로 마음을 나눈다. 그저 그 크기와 정도에 차이가 있는 것뿐이다. 그러니 그 안에서 생기는 오해와 상처는 상대와 합의되지 않은 기대와 욕심에서 오는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마음은 얻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듣고 보니 새삼 뒤늦게 깨닫게 된 사실이다. 나는 내 나름대로 마음을 주고, 상대도 자신의 마음을 자기 방식으로 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을 얻었네, 얻지 못했네 하는 것은 유년시절 동네친구들과 하는 게임에서 이겼네, 졌네 했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철저하게 1을 주면 1을 받으며 서로의 이익관계가 당연시되는 자본주의 시대에서 마음을 주기만 하는 것이 생소하기도 하고 반발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는 단지 내가 가지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마음’만이라도 주고 난 후에 준 것을 잊고 있으면 마음 다칠 일은 덜하지 않겠느냐는 의미이다. 눈으로 보이지도,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마음이기에 내가 준 것만큼 똑같이 되돌려 받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러니 처음부터 바라지 않고 주었을 때 상대도 나에게 그 사람의 그것을 주면 더없이 좋고 고마운 일일 것이고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잊고 있는 일이 되어 큰 영향을 받진 않을 것이다. 당장은 받는 것 보다는 주는 것에 익숙해지는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결국엔 이 또한 내 마음을 위한 일일 것이다.

코로나에 홍수에 당장 내가 힘들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도, 내 마음을 주는 것도 쉽지 않은 요즘이다. 그렇다고 한데 가두어 두고 가만히 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리적 거리는 멀리, 심리적 거리는 가깝게 하라는 공익광고가 ‘말이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 마음을 주는 것은 내가 당장 ‘그 사람은 무탈하게 잘 지내나? 아픈 데는 없으려나? 어떻게 지낼까?’ 등의 생각을 하며 안부를 궁금해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전하는 것부터다. 마음을 주는 것에 어려운 공식은 금물이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 그 사람에 대한 내 감정과 내 생각이 나를 채워준다면 결국 마음을 줌과 동시에 얻은 것과 진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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