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년의 시간이 그려낸 절경 무안 몽탄 ‘느러지’
한반도 모양 똑같이 본 뜬 지형 ‘인기’
왕건 설화·‘표해록’ 최부 숨결 간직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아마 수 백, 수 천번씩 ‘후회(後悔)’라는 것을 한다. 그것이 큰 일이던 작은 일이던 무언가를 결정한 뒤 찾아오는 아쉬움이 커서일 것이다. 그런데 후회란 의미에는 사실 기회란 숨은 뜻도 같이 함축돼 있다. 후회를 통해 무언가 배우게 되고 비슷한 순간이 찾아올 경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보다 더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어서 일 터.

수 천년 시간동안 쉼없이 흘러온 영산강이 그려놓은 기암괴석과 은빛모래, 그리고 강 옆 숲 사이로 하늘에 닿을 듯 수 백년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목들까지 서로 어우러져 그려낸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무안 몽탄‘느러지’를 보지 않고 지나간다면 아마 또 이 ‘후회’라는 것이 찾아올지 모르겠다. 일상에 지쳐 잠깐의 휴식이 필요한 누군가에겐 더 그러할 듯하다. <편집자주>
 

한반도 모양의 동강 느러지
담양 용추봉에서 시작돼 목포 하구언에 이르는 영산강은 나주평야을 지날 때 강폭이 넓어져 유속이 느려지고, 나주시 동강면 느러지를 통과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한반도 모습을 하고 있다. 바다로 가기 전 호흡을 가다듬고 가는 이 곳은 여유롭고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느러지 곡강이다.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영산강이 굽이쳐 흘러가는 모양따라 마치 섬처럼 형성된 지형이 마치 한반도를 연상시켜 ‘작은 한반도’라 불리는 이곳 ‘느러지(마을)’. 느러지는 말 그대로 ‘물이 느러졌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숨겨진 주어는 ‘땅’이다.

영산강 곳곳에는 큰 바위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물이 이 바위를 굽이 쳐 흐르면서 S자, 혹은 U자 형태를 만들어내고 유속이 약해진 곳에 모래가 쌓이게 된다. 이 모래가 모여 만든 땅이 바로 느러지다. 자연의 고결함이 농축된 곳인 셈이다.

‘나주 느러지 전망대(나주시 동강면 동강로 307-226)’는 지난 2010년 조성됐다. 영산강의 오랜 과거 흔적들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특이한 지형을 일반인에게 보여주기 의도에서다.

느러지 전망대를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느러지(마을)’은 행정 구역상 무안 몽탄면 이산리이다. 즉 나주와 무안을 한 곳에 공존해 눈길을 끌고 있다.

S자 형태로 굽이굽이 영산강이 흘러가는 탓에 과거에는 곡강(면)이라 불리기도 했던 이곳은 아름다운 자연절경과 함께 설화와 역사 흔적이 혼재해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과 전투 중 연신 패배를 거듭하고 있는 차에 이곳 느러지 근처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꿈에 신선이 나타나 군사를 대피시키지 않고 뭐하고 있느냐고 꾸짖었고, 이에 놀라 급히 군사를 돌리고 나니 급작스레 물이 쏟아지듯 들이차 큰 피해를 막았다는 이야기가 대표적. 느러지가 위치한 몽탄이란 지명 이름도 꿈 몽(夢)’, ‘여울 탄(灘)’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실제로 하구둑이 설치되기 전까지 ‘느러지’에는 조수간만 때문에 물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하루 두차례씩 반복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 인물인 최부의 ‘발자취’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나주 동강 출신인 최부는 명나라 체류 기록물인 ‘표해록’을 집필한 인물. 표해록은 세계 3대 중국 기행문으로 평가받는 대작이다. 최부는 본래 도망간 유민이나 죄인을 잡아들이는 관원이었는데 제주도 파견 중 부친상을 당해 나주로 돌아가다 풍랑으로 표류, 명나라까지 가게됐다. 표해록은 이 기간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해 둔 여행기다. 최부는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환송 중 상중이라는 이유로 상복을 벗지 않고 부친을 향한 효를 다해 명나라 관리들을 탄복시켰다.

나주 느러지전망대 입구에는 최부의 이같은 효심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 또 인근 곡천리 철산마을에서 옥정리 봉추마을까지 ‘곡강 최부길’도 조성돼 있다. 또 나주 동강면 인동리 성지마을에는 아직도 최부의 생가 터가 자리하고 있으며, 느러지(마을)근처에는 최부와 그의 친부 묘도 자리하고 있다.

<주변 가볼만한 곳>
 

나주시 동강면 곡천리∼옥정리 구간의 영산강 자전거 길.

◇영산강 자전거길

담양댐에서 목포 영산강 하구둑까지 133km로 이뤄진 영산강 자전거길(나주시 동강면 곡천리~옥정리). 영산강 발원지는 담양군 용연리 용추계곡이다. 이곳에서 발원해 담양호를 이루고 전남도를 굽이 굽이 지나 목포 영산강 하굿둑을 거쳐 서해로 흘러간다.

이중에 여기 느러지를 포함된 약 8km 구간은 자전거길 중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계절마다 이름모를 들꽃과 나무들이 자아내는 향기와 아름다운 자태는 최고의 자전거 여행을 즐기고 싶은 분들에게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느러지 가는 길목에 있는 나주 공산면의 우습제 생태공원 전경.

◇우습제 생태공원

느러지 가는 길 중간(전남 나주시 공산면 동촌리)에 조성된 우습제생태공원은 무려 3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자연형 저수지다.

현재 총저수량 26만 9천490t, 유역면적 195ha에 이른다. 저수지 면적은 약 42만 9천㎡이다.

이곳에는 약 13만평 규모의 홍련이 자생하고 있다. 홍련의 꽃말은 믿음, 신뢰, 순결이다. 여기 홍련은 인위적으로 심어진 것이 아닌 조선시대때부터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7~8월 사이 약 3차례에 걸쳐 개화했다가 지기를 반복 하는데 이 기간 약 100만송이 꽃이 핀다. 40~50분이면 다다를수 있는 4km 규모의 데크길이 조성돼 있어 홍련의 매력을 마음껏 느낄수 있다.
 

퇴각중 견훤 군사들이 아침에 식사를 했다는 식전바위.

◇식전바위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점령하기 위해 견훤과 공산면 상방리 복사초리 전투를 치뤄 승리했다. 전쟁에서 진 견훤은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새벽시간 긴박한 상황에서 퇴각 중 어느 바위에 이르러 견훤군은 급하게 아침 식사를 했는데 후세 사람들이 이 바위를 ‘식전바위(동강 몽탄간 국지도 49호선 위치) ’라고 불렀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집안의 안녕과 자식들의 공을 비는 토속신앙의 수호신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근세에 들어서는 동강면 월양, 장등, 곡천, 진천 주민들이 생필품을 교환하기 위해 새벽시간 곡식을 싣고 옛 몽탄나루로 이동하던 중 허기진 배를 채우던 장소이기도 했다. 우리 선조들의 애환과 손길이 깃든 소중한 장소인 셈이다.
 

무안 몽탄면 이산리 배뫼마을에 있는 식영정 전경.

◇식영정

식영정(전남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배뫼 마을)은 느러지(곡강)를 배경 삼아 지어진 정자다. ‘식영(息影)’은 본래 ‘세상을 멀리한 음지에서 행적을 지우고 심신을 수양하면서 인간 본성을 지킨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식영정은 한호(閑好) 임연이 1630년에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식영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형태를 보인다.

식영정을 오르기전 돌계단이 있고, 양 옆으로 푸조나무와 팽나무가 이곳을 지키듯 서있다. 이 나무들 중 팽나무는 최고 수령이 500년이 넘고 높이도 13m에 달할만큼 웅장하다. 보호수로 지정돼 관리를 받고 있다. 영산강 너머로 노을이 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 식영정 뒷편에는 나란히 통정대부좌승지 한호나주임공연유허비 식영정유래기비가 서있다. 조선시대 선비의 유유자적한 삶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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