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중 변호사의 남도일보 독자권익위원 칼럼-초스피드 인터넷 시대에도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초스피드 인터넷 시대에도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강신중(법무법인 강율 대표변호사)

지금 우리는 첨단기술 덕분에 초스피드 시대를 살고 있다. 무엇이든 원하기만 하면 바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 저녁에 주문한 물건은 로켓 배송이 되어 다음날 새벽에 집 앞에 놓여 있고, 보고 싶은 영화, 듣고 싶은 음악, 필요한 정보와 지식도 몇 초안에 검색하고 확인할 수 있다. 속도가 빨라지면서 쉽게 얻게 되는 편리함도 있지만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결과물을 도출하기까지 거치게 되는 과정을 잃어버리고 있다.

온라인 검색으로 물건을 구입하게 되면서 매장에 갈 필요가 없고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불편함을 겪지 않아도 된다. 댓글에 달린 상품평을 참고하면 굳이 다른 이들의 의견을 직접 물을 필요가 없어진다. 편한 장소에서 손가락만 움직이면 즐길 수 있는 볼거리들 또한 즐비하다. 기다릴 필요도 이동할 이유도 없다. 적은 노력으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 효율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신 우리는 무엇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참여할 수도, 무언가를 우연히 찾아낼 수도,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수고하면서 깨닫거나 배우는 기회가 점점 적어지게 된다. 모든 것이 미리 만들어져 온라인상에 보기 좋게 편리하게 진열된 것을 재빠르게 고르기만 하면 되는 세상이 왔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의미를 가늠하거나 상상하지 않아도 정확한 정보가 제공된다. 최종 판단을 위해 내가 고민하고 이미지를 구상해보는 것보다 이미 의미가 포함된 친절한 자막이 포함된 영상을 선택만 하면 된다. 그래서 덜 실수하고 덜 오해하고 더 잘 알게 되었다. 이전보다 더 빨리 결정을 하고 더 좋은 성과를 내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온라인으로 연결된 초스피드 시대에 살아가면서 개인은 매몰되고 개성이 묻혀버리기 쉽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리 크게 다르지 않고 평범하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삶은 적어도 자신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폴란드 사상가 지그문트 바우만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라는 책에서 더 이상 신비롭고 별난 것이 없는 현대 사회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겠다고 한다. “가장 평범한 삶으로부터 건져낸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놓칠 뻔한 특별함을 눈앞에 드러내 밝히려 한다. 익숙해 보이는 것에 진정으로 익숙해지고 싶다면 그 익숙함을 낯설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바우만은 현대인의 삶의 주무대가 되어버린 온라인과 거기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인생, 그런가 하면 그것으로 인해 발생한 세대차이와 인터넷이 매개하는 섹스 등 숱한 문제들을 지적했다. 곁에 있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고 손안의 세상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사람에게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관심사가 같다는 이유 하나로 정서적 유대감을 피력한다. ‘좋아요’를 눌러주기를 바라며 작은 액정화면에 몰두한다. 접속하면 접속할수록 고독해지는 숙명을 알지도 못한 채, 아니 알면서도 더더욱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바우만의 “인간 존재라는 매우 아름다운 모습은 허물어지고 사라지는 것 같다.”는 한마디는 우리 모두의 앞날을 내다보는 듯하여 섬뜩하다.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일상을 덜어내거나 버리지 말고 채워 넣을 수밖에 없다. 무엇이든지 직접 겪는 과정은 처음에 낯설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우연히 발견한 것들을 우리 것으로 삼으면서 진정으로 우리 삶에 익숙해질 수 있다.

목표에 빨리 도달하면 그만큼 잃는 것은 중간 과정이다. 내 삶에 볼륨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외형만 남게 된다면 개개인의 삶은 개성이 없고 독특한 정체성이 사라진다. 성장과정은 독립된 한 사람이 되는 여정이다. 독립되고 주체적인 개인이 된다는 것은 내 삶의 과정을 만들고, 새로운 의미로 채워가는 일이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가 반복되는 세상일지라도 내가 살아가는 과정이 있다면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지게 된다.



“하지만 네로, 이제 곧 여름이 온다. 새롭고 한없이 넓은 여름이 온다. 그리고 나 역시 걸어가리라. 새로운 여름을 맞고 가을을 맞고 겨울을 맞아 봄을 맞아 더욱 새로운 여름을 기대하며. 온갖 새로운 것을 알기 위해, 그리고 나의 온갖 물음에 스스로 답하기 위해.” (다나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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