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다고 슬프지 않은 건 아니다

김은성(국립정신건강센터 소아청소년정신과 연구원)

“울지 않는다고 슬프지 않은 건 아니야. 웃고 있다고 다 기쁜 게 아니듯이…”

드라마 ‘라디오 로맨스’에서 나온 대사 중 하나다. 지난 한 주 동안 마음 한 구석에 이 문구가 자꾸 되뇌어져 먹먹해짐을 느꼈다. 남을 웃기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일을 할 때만큼은 “슬픈 나”를 버리고 있는 힘껏 웃는 얼굴을 장착한다.

많은 사람에게 순박한 웃음을 전해주던 개그우먼의 갑작스런 부고는 다시금 필자의 주변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혹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손 잡아주기를 바랐던 사람을 못 알아보진 않았는지, 하루하루가 바쁘고 힘들다는 이유로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괜찮다고 웃어 보이는 누군가가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겉으로는 항상 웃고 있지만, 내면에는 우울함과 무기력감과 같은 불안한 심리상태를 경험하는 증상을 일컫는다(두산백과). 일본 오사카 쇼인여자대학의 나쓰메 마코토 교수가 처음 사용한 심리학적 의학 용어로, 밝은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에 슬픔과 분노 같은 감정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말한다. 실제 감정을 억제한 채 늘 웃는 얼굴로 고객에게 서비스하는 콜센터 상담원처럼,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감정노동자, 대인관계 문제의 어려움, 경쟁에 내몰리는 직장인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스트레스 증상이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 상태와 상관없이 언제나 미소를 지어야만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느끼는 심리적 어려움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관찰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면에는 상당한 스트레스와 우울, 불안, 심각한 경우에는 자살에 대한 생각까지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스마일 마스크라는 가짜 표정의 가면을 쓰고 속으로는 슬픔과 분노를 감추고 있다는 점에서 ‘가면우울증’과 유사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싫은 내색을 하면 까탈스럽다고 할까봐 그렇지 않은 척, 눈물이 나올 만큼 힘들어도 여리다고 얕잡아 볼까봐 그렇지 않은 척, 좋다고 한껏 고양되면 호들갑스럽다고 할까봐 또 그렇지 않은 척. 심지어 내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주어져도 기대에 부응하고, 상대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는게 내키지 않아 괜찮은 척까지.

이렇게 ‘척’ 가면을 쓰고 우리의 감정을 숨겨왔다. 내면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여겨온 동양 문화의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즉, 감정표현을 억제하는 것이 사회·문화적으로 보다 바람직한 것이라는 사회의 암묵적 현상에 순응한 결과라고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해 따라오는 부작용은 가히 어마하다.

내 속에 있는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슬플 때는 가끔 울어도 괜찮다. 기쁠 때는 물론, 큰 소리로 웃어도 괜찮다. 희로애락을 느끼는 것 자체를 억제하려는 대신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방법에 조금 더 집중해 보자. 적극적인 자세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단, 명심해야 할 한가지는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같이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할 때는 자신을 주어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주어로 대화를 시작하면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담기 쉬워 의도치 않는 갈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감정만큼 다른 사람의 감정도 중요하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내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내면의 여유를 만들어보자. 혹시 웃고 있지만 기쁘지 않아 보이는 사람은 없는지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여유 말이다. 적어도 가면에 속아 소중한 사람을 잃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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