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37)이심전심

<제4화>기생 소백주 (37)이심전심

그림/이미애(삽화가)
 

그림/이미애(삽화가)

글을 읽어 내려가는 소백주의 흰 손이 가늘게 떨리며 입가에 오월 모란꽃 같은 희미한 미소가 살포시 수줍은 듯 벙그러지고 피어나 두 볼 가득 분홍빛으로 물들어 고이고 있었다.

“漌激搖少白舟(근필격요소백주)

흰 돛대를 달고 맑은 물결을 가르며 가는 아리따운 배야!

進往幾年男望待(진왕기년남망대)

오고 가며 몇 해나 사내를 기다리느냐!

後日洋滿誰先對(후일양만수선대)

훗날 배가 가득 차 누가 먼저 너를 건드렸느냐고 묻거들랑

門到兼前晩湖也(문도겸전만호야)

문 앞에 함께 이른 이는 이 만호였다고 말 하여라!”

하얀 돛대를 달고 고기 잡으러 오가는 배에 소백주를 비유하여 쓴 시(詩)였다. 훗날 만선(滿船)이 되어 즉 소백주의 배가 불러(아기를 가져) 포구에 돌아오면 사람들이 ‘누가 너를 먼저 건드렸느냐?’고 묻거들랑 이 만호(晩湖·저물녘의 호수) 곧 소백주 집에 저물녘에 도착한 김선비 자신이 건드렸다고 말하라는 내용이렷다.

꽃 피는 봄밤이라서 그랬을까? 얼었던 대지가 풀려 그 물큰한 흙 자리마다 물기가 돌아 만물이 생동하는 봄날 여인들은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기 위하여 몸을 여는 대지처럼 그 몸을 열고 마침내 굳은 마음마저 여는 계절이기 때문이기에 그랬을까?

김선비의 시는 그 대지를 닮은 아리따운 여인 소백주의 마음을 심난하게 흩어놓기에 충분하였다. 아니 땅속 깊은 보드라운 살덩어리 실뿌리부터 물들어 오르는 봄날에는 지나가는 가녀린 훈풍에도 그만 물기 머금은 꽃잎을 열고 꿀 가득 고인 깊은 속내를 열어 보이는 것이 자연의 이치였던 것이다. 봄날 김선비의 시는 소백주에게 깊은 속내를 열고 부끄러운 꽃잎을 피어나게 하는 훈풍 그 자체였던 것이다.

김선비의 재기 넘치는 시를 읽고 난 소백주는 그새 얼굴이 양달 녘에 활짝 핀 붉은 모란꽃이었다. 아마도 마지막 구절에서 소백주는 김선비의 앞뒤가 분명한 책임감 있는 사내의 진심을 읽어버렸고 그것이 감동으로 여인의 뜨거운 가슴을 치고 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호!.......”

소백주는 탄성을 지르며 속으로 은근한 미소를 삼켜 물었다. 그것은 작위적인 위선이 아니었다. 눈빛과 눈빛이 통하고 드디어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말하지 않아도, 부러 묻지 않아도 뜻과 뜻이 통했을 때 나오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전율로 짜릿하게 감겨오는 피 뜨거운 남녀에게만 통하는 무언의 감탄사였다. 소백주는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바깥의 일하는 아낙을 불렀다.

“밖에 누구 있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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