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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파주염씨(坡州廉氏) 국파공파 금파종가 <48>

나주 파주염씨(坡州廉氏) 국파공파 금파종가<48>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종가 재발견
뿌리깊은 고려 명족…사대부 집안
고려 왕비 배출한 신진 사림 가문
후손은 벼슬 사양 후학양성 매진
염제신 초상 보물 제1097호 지정
충경서원 중건하며 보존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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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경서원 전경

영산강이 굽어 흐르고 두루미 날아드는 전남 나주 새월마을(나주시 송월동) 강변 언덕에는 비운의 삼형제를 추모하는 금강사가 있다. 이곳에서 보존해 왔던 초상화가 섬세한 필치와 품격을 가진 고려 후기 작품으로 인정돼 국가 보물 제1097호로 지정된 염제신 초상이다. 초상화의 주인공 염제신과 아들 3형제가 고려 명신·명족이었다는 사실은 이색이 쓴 목은문고에 ‘공민왕이 친히 그려 하사했다’는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염제신의 세 아들이 과거급제하는 영광 뒤에 한 사건(1388년)으로 모두 참화를 당하는 비운의 역사가 가문에 전해진다. 강가의 작은 사우에 왕의 그림이 보존됐던 사연을 파주염씨(坡州廉氏) 국파공파 금파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과 함께 살펴본다.

◇고려 문하시중 염제신 중시조

파주염씨는 삼한시대 염사지역 작은 나라의 수장이었던 염사치가 한나라 광무제로부터 군봉을 받으면서 염씨 성을 받았다는 기록을 근거로 득성의 기원을 표방한다. 태조 왕건의 고려 개국을 도운 공신으로 대사도에 오른 염형명(?~?)을 시조로 모신다. 7세 염신약(1118~1192)은 인종 때 문과급제해 한림시강학사, 서북면병마사를 거쳐 정당문학에 오른 문신이다. 14세 염제신(1304~1382)은 일찍 부친을 여의고 고모부인 원나라 평장사 말길의 집에서 자라 원나라 상의사가 되었으며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귀국해 정동성낭중을 지냈다. 다시 원나라 익정사승으로 벼슬하고 돌아와 공민왕 때 우정승, 문하시중에 오르고 곡성(파주의 옛이름)부원군, 곡성백 등 두번 공신에 책봉돼 충경서원에 배향됐다. 그의 딸이 공민왕의 왕비 신비 염씨다.

◇삼형제 과거급제 가문의 영광

염제신의 아들 삼형제 염국보, 염흥방, 염정수가 신진사대부로서 모두 과거급제했다. 15세 염국보(?~1388, 호는 국파)는 성리학을 공부하고 익재 이제현의 문생으로 과거급제해 정몽주와 함께 고려말 개혁에 참여했다. 벼슬은 예문관대제학 지춘추관사에 올라 서성군에 책봉됐으며 국파공파의 파조가 된다. 염제신의 셋째 아들 염정수(?~1388)는 이색의 문하에서 공부해 과거급제했고 대사헌, 우문관대제학을 역임했으며 훤정집을 남겼다. 둘째 염흥방(?~1388)은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홍건적을 평정하고 개경 수복에 공을 세웠으나 권력투쟁에 휘말려 가문이 참화를 입는 원인을 제공했다. 이 무진년(1388년) 사건으로 3형제는 물론 염국보의 아들 염치중까지 화를 피하지 못했다. 3형제는 464년이 흐른 조선조 철종 때 나주 금강사에 배향됐다.

◇왕조교체기 권력투쟁에 참화

염국보의 손자인 17세 염이(?~?)는 과거 급제해 벼슬은 첨지통례문사를 지낸 문신이다. 무진 참화라는 가문의 위기를 거울삼아 스스로 호를 폐와(문을 닫아 걸고 세상을 피함)라 부르며 두문불출했으며 ‘명예와 지위를 구하지 말라’는 유지를 남겼다. 그의 차남 염순공(?~?)은 대사헌 김덕용의 딸 광산김씨와 혼인하고 나주에 입향, 행랑채를 명륜당으로 만들어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 집터가 현재 나주향교 위치다. 그의 학행과 가문 내력이 알려져 세종이 중군사직, 사헌부지평을 제수했으나 나가지 않았다. 염순공의 아들 염재(?~?)는 두문동 후손을 등용하는 세종의 부름을 받아 송화(용인)현감을 역임했으며, 그 행적을 기리는 청백비가 남아있다.

◇보물 보존 위해 서원 개축

24세 염공필(1569~?, 호는 금파)은 선공감정을 지내고 이괄의 난 때 임회 장군 의병창의에 참여해 호남절의록에 올랐고 금파종가를 열었다. 그의 아들 염진명(1613~1685)은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사헌부감찰을 거쳐 의금부도사를 역임했다. 그의 일가인 염진거의 증손자 염영서(?~1781)가 홍대용이 혼천의, 자명종을 나주 금성관에서 제작할 때 실학자 나경적의 제자로서 제작에 참여해 조선 과학의 전통을 이었다. 종가는 염제신 초상화를 금강사에 보존했었는데, 건물이 낡고 보관이 불안정해 곡절을 겪었으나 당시 파주염씨국파공파종중 염홍섭 회장의 노력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국가 보물로 지정받았다. 가문의 보배를 보존하기 위해 그간의 관리 곤란을 거울삼아 동기와와 철골구조로 튼튼하게 충경서원을 건축했다고 한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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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민왕필 염제신상(보물 제1097호) 모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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