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이인현 (피아니스트 겸 작가)

몇 달 전 광원산업 이수영 회장님의 카이스트에 766억을 기부라는 신문기사를 접했다. 과학이 곧 국력이라는 생각에 한국에서도 노벨상이 나오길 희망한다며 자신이 평생을 바쳐 일궈놓은 재산을 기꺼이 내놓으셨다. 한평생 살면서 그렇게 큰 돈을 모으기도 어렵지만 내가 그녀라면 과연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장님의 통 큰 결정에 경이로움과 찬사를 보내며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무엇일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서양 음악사에는 독일 태생에 멘델스존이라는 음악가 겸 작곡가가 있다. 이름만 들어서는 클래식 음악전공자나 애호가가 아닌 이상 그를 잘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거의 매주 주말이 되면 좋든 싫든 그의 음악을 듣는다. 결혼식장에 가면 신부가 입장할 때 들리는 음악이 바로 그가 만든 곡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대부분 사람들은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를 안다고 이야기한다.

유대인 가문에 유명한 철학자인 할아버지, 은행장인 아버지, 제조업 가문의 어머니를 둔 멘델스존은 태생이 부유했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금수저에 엄친아였다.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와 피아노를 좋아하는 누나의 영향으로 남자임에도 피아노를 배울 기회를 가졌던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음악에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명망 있는 집안의 아들로서 음악을 한다는 건 쉽지 않았지만 그의 음악적 재능과 열정에 가족들은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 음악을 해나가는 음악가와는 달리 부유한 환경 덕분에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부정적인 시각을 보내기도 하였다. 헝그리 정신이 부족해 그의 음악에는 깊이가 없고 가볍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분명 그만이 가진 색깔이 존재했다. 밝고 화목한 가정환경에 구김없이 자란 그가 만든 음악은 생기가 흘러 넘쳤고 어떤 음악보다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 책을 사랑하는 아버지 덕분에 다른 사람보다 다양한 문학작품을 쉽게 접했던 그는 책을 통해 자신의 상상력을 무궁무진하게 만들었고 이 창의력은 그가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하였다. 그의 음악은 풍성했고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멘델스존의 연주를 보고 왕자가 직접 공연을 의뢰할 만큼 그의 음악에는 관객을 사로잡는 강력한 매력이 있었다.)

음악가로서 연주자로서 큰 명성을 떨치는 그였지만 마음 한 켠에는 힘들게 살아가는 음악가들을 위해 도움이 되고자 하는 생각이 존재했다.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재능은 있으나 빛을 보지 못한 음악가들 혹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음악가들에게 연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음악가들의 인지도를 높일 수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멘델스존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보석같은 곡을 데뷔시켰고, 주옥같은 음악가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재능은 출중했지만 가난한 환경 탓에 살아생전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슈베르트를 세상에 선보여 재평가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그였다. 또한 전세계 교회 혹은 성당에서 특별한 날에 항상 울려 퍼지는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대중에게 선보인 사람도 멘델스존이었다. (그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 대단한 곡을 영원히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과거에 위대함을 발굴하는 것 뿐 아니라 미래를 위해 독일 라이프치히에 음악학교를 설립했으며 우수한 음악가들을 교수진으로 배치함으로서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음악 교육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굳이 나서서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 동시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일이 아니기에 충분히 외면할 수 있었겠지만 그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환경을 이용해 자신이 할 수 있는 헌신과 노력 그리고 최대한의 선행을 베풀었고 이는 서양음악사에 있어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평생 일궈놓은 재산을 좋은 곳에 기부하는 모습 역시 존경스럽고 찬사받을 만한 일이지만 멘델스존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어려운 이들을 물신양면으로 돕고 과거를 발굴해내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행동 또한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멘델스존이 가장 잘했다고 여겨지는 업적 중에 하나가 위에도 언급했던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대중에게 선보인 일이다. 그래서 바흐에 관한 사설은 아니지만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추천한다. 이 곡은 총 3시간의 연주로 이루어졌지만 필자가 소개할 곡은 39번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로 6분 정도 되는 짧은 곡이다. 신약성서의 <마태복음> 26-27장에 기록된 예수 수난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음악작품으로 바흐가 만든 작품 중에 필자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슬픔을 아름다운 선율에 고스란히 담아 눈을 감고 듣고있으면 장면과 함께 그 당시에 돌아간듯한 느낌을 주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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