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현 (피아니스트 겸 작가)

 

작년 겨울 우리의 삶에 서서히 파고든 코로나는 생각보다 집요했다. 금방 잠잠해질 줄 알았던 바이러스는 전세계를 잡아먹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보이지 않는 전쟁은 시작되었다. 육체와 정신이 한계에 다다랐을 무렵 마침내 백신이 개발되었다는 희망적인 뉴스를 접했고 필자는 힘든 이 전쟁을 드디어 끝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보다 더 강력한 델타가 다시 찾아왔고, 이 변이는 더 많은 감염자를 만들어내며 다시 한번 우리를 소용돌이 속으로 빠뜨렸다. 코로나로 인해 불가능해 보였던 2020 도쿄 올림픽은 여러 이유로 개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고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걱정 속에 개막되었다.

사람의 생사가 오가는 바이러스와의 사투 속에 올림픽을 강행하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지만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있자니 올림픽 개최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를 대표해서 나라를 위해 그리고 힘들어하는 자국민들을 위해 그 어떤 올림픽보다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결과에 상관없이 그들의 눈빛과 열정, 그리고 눈물에 필자는 찬사와 박수를 아낌없이 보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살고 있는 현실에 올림픽이 열린 2주는 그 어떤 것보다 값진 힐링이었다.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해 나라를 알리고 국민들의 행복과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선수들이 진정 애국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하였다.

서양 음악사에는 모차르트나 베토벤만큼 우리의 생활 속에 함께하는 폴란드 출신의 쇼팽이라는 음악가가 있다. 멜로 영화나 드라마 혹은 프로포즈를 하거나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흘러나오는 대부분의 음악은 그가 만든 음악이다. 그의 음악은 그 어떤 음악보다 로맨틱하고 사랑스러우며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그의 삶 역시 굉장히 아름다웠을 거라 추측하지만 사실 그는 꽤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음악 신동으로 유럽을 돌아다니며 연주자로 살아가는 그에게 자국 폴란드의 혁명 소식은 마음속 깊이 잠자고 있던 애국심에 불을 지폈다. 폴란드인으로서 러시아 지배하에 힘들게 살아가는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혁명군이 된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고 조국을 위해 명예로운 일이었다. 폴란드로 돌아갈 채비를 끝낸 그에게 아버지가 보낸 편지는 그에게 진심 어린 조언이 담겨있었다. ‘너의 마음은 충분히 알겠지만 진전 너가 조국을 위하는 길은 혁명에 참전하는 게 아니라 피아니스트로서 나라를 널리 알리는 길이다.

진정 너가 조국을 위한다면 자랑스러운 폴란드 음악가로서 폴란드를 널리 알리기 바란다.’ 현실적인 아버지의 편지에 군인으로서 나라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웠지만 음악인으로서 폴란드를 더욱 널리 알리기로 다짐한다. 그는 폴란드가 낳은 최초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연주를 통해 작은 나라 폴란드를 전세계에 알렸고,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지만 조국을 위해 자신의 방법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공항은 쇼팽 공항이라 명명되었으며, 아직까지도 폴란드인들은 쇼팽이 자국의 음악가 라는 사실에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사실 쇼팽은 여러가지 상황상 죽을 때까지 폴란드로 돌아가지 못하는 떠돌이 삶을 살았다.)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해보면 여러가지가 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무래도 전쟁이 터졌을 때 목숨을 바치는 일이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면 운동선수가 올림픽에 나가 나라를 알리고, 음악가가 세계적인 대회에서 한국을 알리고, 한국 건설사가 해외에서 공사를 해내는 이 모든 것이 대한민국을 위하는 길이지 않을까 싶다. 좀 더 나아가 자신이 가진 재능을 십분 발휘하면서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사는 것만으로도 나라를 위해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추천하고 싶은 쇼팽 음악은 많지만 가볍고 편안한 음악을 원한다면 야상곡 2번을, 좀 더 그의 깊이를 느끼고 싶다면 발라드 1번을 추천한다. 애처로움과 간절함, 그리고 아름다움과 화려함 속에 묻어나는 슬픔을 보여주는 발라드 1번은 쇼팽이기에 가능한 그만의 색깔로 만들어져 있다. 기승전결이 잘 갖추어진 구성에 마음에 심금을 울리는 선율까지 음악을 듣는 내내 당신의 마음에 힐링을 가져다 줄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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