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천 (주)KFC 대표이사 (경영학 박사)

 

선거철이 되면 누구나 더 나은 사회를 꿈꾼다. 희망을 걸만한 후보자를 선택하여 새 정치를 기대해보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정치참여다. 하지만 작금의 선거에서는 이런 소박한 기대도 쉽지 않았다. 예비경선이 마무리되는 지금까지 여야를 막론하고 시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만한 국가 비전은 찾아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반면에 황색언론들과 손잡고 서로 흠집 내기 경쟁하다 보니 시민들은 벌써 다가올 5년이 걱정이다. 과거의 정치역정을 뒤돌아보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도 후보자 시절 불거졌던 사건들이 빌미가 되어 국정을 얼마나 혼란스럽게 하였던가?

또한 여기저기서 악취가 나고, 천박하기 그지없는 상식 이하의 허언이 즐비하였다. 가장 큰 충격은 대권을 바라는 소위 사회지도층이었던 인사들의 세계관이나 품격이 수준 이하였다는데서 오는 국민의 자괴감이었다. 고대 로마제국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보에티우스는 그의 책 <철학의 위안>에서 “권세는 그 사람의 단점을 드러나게 할 뿐이다.”라며 지위에 걸맞지 않은 품격을 우려하였는데, 이 말이 너무도 딱 들어맞아 오히려 서글프다. 앞으로는 각 정당이 후보의 기본적인 자질에 대한 사전 검증작업을 반드시 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하여 과연 ‘정치란 무엇인가?’를 새삼 묻지 않을 수 없다. 전국시대라는 난세에 살아야 했던 맹자는 위와 같은 질문으로 제국의 군주들을 추궁한다. 바람직한 정치는 민본 즉 백성이 근본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그는 군주가 백성과 함께 즐거워한다면(여민락) 천하에 대적할 이가 없을 것이라고 왕도 정치론을 설파한다. 당시 왕의 말 한마디면 즉시 목이 달아나는 시절에 백성이 첫째요, 나라가 다음, 왕인 당신은 세 번째라고 당당하게 직언하였다.

불행하게도 그 옛날 맹자처럼 자칭 천하의 군웅들에게 죽비를 드는 현인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목소리를 내는 역할은 바로 시민의 몫이다. 현대의 국가 제도 하에서는 누구나 국가의 경영자가 될 수 있다. 내가 직접 출마하여 대중들의 선택을 받든지 아니면 적어도 올바른 사람을 가려 뽑을 수 있는 안목을 지녀야 한다.

주권자인 시민이라면 비록 희망적이지 못한 상황에서도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자세를 견지하여야 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극단적인 공포로 인하여 달콤한 언변으로 거짓 유토피아를 설파하는 인사에게 도피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도박이다. 나의 개인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그럴듯한 경제 논리, 무분별한 성장과 소비를 부추기는 자구 파괴적 공멸 사고를 가진 자에게 경도되는 것은 함께 망하는 길이다. 힘들지만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그 수단으로 공평한 분배와 조세 정의를 분명히 말하는 사람을 정치지도자로 골라야 한다. 특히 스스로 솔선하면서 국민에게 도덕적, 윤리적 책무를 강조하여 인륜이 살아있는 그런 국가를 만들겠다는 철학을 가진 지도자가 지금 우리에겐 필요하다.

보통 사람인 우리는 이웃과 더불어 살며 일한 만큼 대접받기를 소망한다. 또 그런 사회를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주기를 바란다. 그런 나라는 도덕적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수많은 시민이 정치가 달라지기를 바라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은 눈앞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불의한 결정을 눈감아주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상황에서 행동해야 할 시민들이 침묵하고 움츠러들었던 연유이다. 주권 시민은 소박하지만 강고한 개인적 윤리관이 뭉쳐질 때 강건한 사회가 형성된다는 진리를 손톱을 깨물면서라도 믿어야 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가을날>이라는 시에서 “주여, 때가 왔습니다/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하였습니다” 이렇게 노래하면서 풍성한 가을에서 지난여름의 위대함을 읽는 감수성을 보여 준다. 다가올 대선이 현명한 선택으로 마무리되고, 5년 뒤 이 고뇌의 시간이 위대한 전환점으로 추억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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