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표(전 백제고 교장)

 

같은 날을 무한적으로 매일 반복하는 한 남자의 무한시간 루프를 그린 영화가 있었다. 빌 머리 주연의 [사랑의 블랙홀]이란 영화이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날을 보내면 보낼수록 자신에게 주어지는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반복은커녕 순식간에 미래의 세상이 오늘 펼쳐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말하자면 20년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질 변화들이 2년 만에 순식간에 이뤄진다면 그것은 행복한 세상일까, 아니면 불행한 세상일까?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세상은 20년을 건너뛰어 2040년도로 마치 타임슬립한 것 같다. 코로나가 우리를 확 떠밀어 미래로 보낸 것이다. 물론 세상은 코로나 이전에도 달라지고 있었겠지만 일상에서 그 속도를 체감할 정도는 아니었다.

우선 가정의 형태가 심하게 바뀌는 중이다. 발표에 따르면 최근 1인 가정의 비율은 40%가 넘어가고 있다고 한다. 전체 가정 비율 중에서 가장 높다. 가히 혼밥 세상이라 할만하다. 나이 들어 혼자 남아서 1인 가정이 된 비율도 포함되지만 40세를 훌쩍 넘긴 미혼, 혹은 비혼이 보편화된 것이다. 이런 현상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전혀 낯설지 않게 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결혼이란 인류 문명과 함께 시작한 관습이자 제도였고 그것은 기대수명이 50세도 안 되는 시대의 산물이다. 그런데 100세 시대가 되고 보니 20대 청춘에 결혼해 7-80년을 함께 산다는 것이 두렵고 어색한 모양이 된 것이다. MZ세대들은 일찍 결혼하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여건도 안 되는 데 굳이 관습에 따라 결혼을 해야만 하는가?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결혼은 이제 필수도 아니고 모럴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기성세대들이 결혼을 의무로만 바라보는 한 젊은 세대들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보고, 어떤 것이 행복한 삶인지를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는 것이 낫다. ‘나홀로 삶’들이 보편화되었다면 인식과 관습도 바뀌어야 한다. 새로운 삶의 형태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미 기업의 소비자 마켓전략은 그렇게 맞춰가고 있다.

교육형태는 더 심각하게 변할 것 같다. 현재의 초·중·고·대학생들은 최초의 원격비대면 교육 세대이다. 코로나 비상상황이 끝나도 원격수업의 필요성은 계속 남을 것이다. 원격수업이라는 ‘비정상’이 정상화로 인식되는 기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학교는 어떤 역할과 기능이 합당할까? 새로운 표준을 찾고 합의해야 한다. 제도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공동체적 논의가 필요한 시기이다. 정원미달이라는 대학위기 상황에서 대학입시교육 핑계는 이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제도권 내 교육이 전체 교육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제 절대적이지도 않다. 교육에 관한한 학교와 학부모는 어느 정도 역할분담을 해야 한다. 타인 존중의 태도와 삶의 행복을 위한 교육에 학부모가 일정 역할을 해야만 한다. 기초교양교육과 인간존중교육, 창발성 고취는 여전히 학교가 더 많이 담당해야할 몫이다. 메타버스교육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 이제 시험용 문제풀이 교육은 가장 쓰잘데없고 의미 없는 교육이 될 것이다. 그런 교육을 답습하고 강요하는 것은 시대착오를 넘어 질병이고 폭력이다. 학부모는 학교라는 제도 밖에 서있는 권리자도 감시자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자녀가 스스로 자립하는 20대까지의 인생교육커리큘럼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당사자일 것이다. 교육문제를 앞에 놓고 학교, 학부모, 학생, 지역사회는 상호간에 갑을관계가 아니다. 아이들 교육 문제를 일방적인 누구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2020년대 이후 정치업계나 언론업계에서는 대중의 ‘분노’가 가장 쏠쏠한 상품이 되었다. 불신과 적대감을 증폭시키고 이를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비즈니스모델이 업계에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 같다. 이 판에 국민들도 나라의 미래가 정치지도자의 역량이나 비전에 달렸다는 고정관념을 버려할 때가 온 것 같다.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들의 지적·도덕적 수준이 국민의 평균치보다 아래라는 것이 이미 확인되고 있지 않는가. 과거에는 정치인들의 도덕적 수준은 믿지 못해도 그들의 지적수준만큼은 일반 국민보다 훨씬 더 높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웬걸? 최근 TV토론에 나오는 대통령 후보들의 언어 수준이나 지적 수준이 거의 동네 바보 수준 아닌가. 이제는 시대정신을 실현시킬 수 있는 사람은 정치지도자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스스로 공부하고, 실천하는 도덕성만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정치인도 언론인도 노동조합도 결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안타깝지만 그것은 철지난 산업시대의 곤궁한 믿음이다. 자기 생각과 “다름”을 증오하도록 부추기는 자들에게 사기당하지 않으려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배움”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2040년으로 이미 가버린 오늘 아침에 씁쓸하게 생각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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