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거리급 4년여만에 발사 재개
전문가 “ICBM 모라토리엄 파기 전 예비동작”

 

북한이 30일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하며 2018년 시작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이래 최대 도발에 나섰다.

북한이 최근 시사한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모라토리엄(유예) 철회에 근접한 행위로, 북한이 전략적 도발 재개 의지를 ‘행동’으로 보임에 따라 향후 한반도 정세가 격랑에 휩싸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북한은 이날 오전 중거리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비행거리는 약 800km, 고도는 약 2천km로 탐지됐다.

북한이 중거리급 이상의 탄도미사일 실험을 한 것은 2017년 11월 ICBM급인 화성-15형을 발사한 이후 처음이다.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는 이에 앞서 2017년 9월 화성-12형이 마지막이었다.

이듬해인 2018년부터 대미·대남 대화에 나선 뒤로 중거리급 이상의 미사일을 발사한 적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발사는 한반도 정세 시계를 확실히 ‘2018년 이전’으로 돌렸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 전체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2017년도에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서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로 이어지면서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북한은 19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핵실험·ICBM 모라토리엄을 의미하는 대미 ‘신뢰구축조치’의 전면 재고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를 본격화하는 첫 행보이기도 하다.

북한은 모라토리엄 철회 검토를 발표한 이후에도 비교적 저강도인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나 순항미사일만 쐈었는데 이번 중거리 미사일 발사로 핵실험·ICBM 발사라는 ‘레드라인’을 넘어설 수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 셈이다.

태평양 괌이나 주일미군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급 사거리의 미사일 실험은 통상 미국을 겨냥한 고강도 도발로 여겨진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모라토리엄 공식적 파기 선언 및 행동 단계 돌입 전 단계적 압박 수위를 높이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며 “한미와 국제사회의 대응 수준을 가늠하기 위한 예비동작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단계적으로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는 만큼 ICBM 발사나 ICBM을 가장한 위성 발사 등이 다음 수순이 될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 노동당 대회에서 미국 본토까지 포함되는 1만5천㎞ 사정권 안의 타격명중률 제고를 비롯해 ▲수중 및 지상 고체엔진 ICBM 개발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핵전략무기 보유 ▲극초음속 무기 도입 ▲초대형 핵탄두 생산 등을 국방력 발전 ‘5대 과업’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런 자신들의 무력 증강 ‘시간표’를 착실히 따라가려는 것이다.

ICBM 발사 등 대형 도발의 계기로는 북한의 정치적 기념일인 2월 16일 김정일 생일(광명성절)이나 4월 15일 김일성 생일(태양절) 등이 거론된다. 3∼4월에 진행될 한미연합훈련을 도발의 구실로 삼을 수 있다.

발사 전에 미국 등의 반응을 보고 정치국 회의나 전원회의 등 노동당 주요 의사결정 기구에서 모라토리엄 파기를 공식 선언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실제로 모라토리엄을 깬다면 한반도 정세 긴장은 급격하게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북미 간 ‘강대강’ 대치 국면이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북한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바이든 행정부의 최근 대북 독자제재 및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 시도에 대해 “‘강대강’ 원칙을 작동시키는 방아쇠를 끝내 당긴 셈”이라며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기 위한 정책기조를 천명했다.

북한이 행동 수위를 높인다면 바이든 행정부도 한미일의 압박 공조를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한미일 3국은 내달 중순께 하와이에서 외교장관 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조율 중이어서 대북 공동 대응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은 5월 출범할 한국의 새 정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다만 대북 압박 강화가 북한의 추가 행동을 불러 정세 불안이 고조된다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행정부도 부담을 느낄 수 있어 오히려 대화 재개를 더욱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에 추가 도발을 삼가는 한편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대화에 관여할 것을 촉구한다”며 기존의 대화 복구 입장을 반복했다.

북한이 혈맹 중국의 ‘잔치’인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2월4일)이 6일 앞으로 다가와 입촌까지 진행되는 상황에서 발사를 강행한 점도 눈길을 끈다.

중국과 러시아는 최근 북한의 도발 원인이 된 ‘합리적 우려’를 해결하라고 미국에 요구하며 연대 전선을 형성해왔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미국과 대치하는 러시아, 미국과 전략경쟁을 벌이는 중국은 북한의 한반도 긴장 고조 행위를 오히려 대미 견제에 유리하게 여길 수 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실은 이날 북한의 발사에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과정을 추진하는 데 공동으로 힘쓰기를 바란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했다.

홍민 실장은 “(북한은) 미러 대치, 미중 전략경쟁, 이란 핵협정 등 중동문제로 전선이 확대된 미국의 대외적 상황을 대미 압박에 있어 절호의 기회로 포착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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