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민 법무법인 (유한) 맥 변호사

송진민 법무법인 (유한) 맥 변호사

대한민국의 현실을 비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자조적 표현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전통적인 표현을 꼽자면 ‘사기 공화국’이라는 단어를 뽑을 수 있다.

이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대한민국의 사기 범죄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인데,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0년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사기죄는 35만3천657건으로 전체 범죄 발생 건수 대비 약 20.7%를 차지하고 있고, 이는 폭행, 강도, 상해 등 폭력 범죄 전체(20만9천911건)의 약 1.5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특히 언론이 사기죄에 주목하는 이유는, 사기죄가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범죄가 아님에도 폭력 범죄보다 더욱 강력하게 피해자의 삶을 파괴하고, 종국적으로는 피해자의 극단적 선택까지 유발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사기 범죄처럼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음에도 피해자의 삶을 파괴하는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이른바 ‘디지털 명예훼손 범죄’가 그것이다.

과거 디지털 명예훼손은 주로 연예인 같은 유명인을 상대로 일어나는 범죄로 여겨져 왔으나, 최근에는 그 대상이 유명인에서 일반인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사이버 렉카’, ‘사이버 불링’같은 신조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사이버 렉카’는 교통사고 현장에 잽싸게 달려가는 렉카(견인차)처럼 온라인 공간에서 이슈가 생길 때마다 조회수를 높여 수익을 내기 위해 재빨리 보도 자료 등을 짜깁기하거나 근거 없는 루머를 포함한 자극적인 영상을 만들어 명예훼손성 컨텐츠를 양산하고 유포하는 유튜버들을 비판하는 뜻에서 등장한 말이다.

‘사이버 렉카’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이버 렉카 유튜버가 만든 영상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위 영상을 함께 유포하는 대중들이 생겨나고, 이후 위 영상을 믿은 대중들이 사이버상에서 특정인을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집요하게 괴롭히는 이른바 ‘사이버 불링’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인터넷BJ와 스포츠 선수가 ‘사이버 렉카’ 유튜버의 허위 사실 유포와 이를 믿은 일부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사이버 불링’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해 큰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고, 학생들 사이에서 메신저를 통한 ‘사이버 불링’ 형태의 학교폭력이 자행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디지털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규정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구성요건상 ‘비방할 목적’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허위 사실로 명예를 훼손한 경우라도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뿐이고, 그마저도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다수에 의해 집단적으로 발생하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에서 행해지는 디지털 명예훼손의 특성상 가해자를 특정하기 매우 어려워 처벌 규정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근본적 한계가 존재하고, 명예훼손 영상을 삭제하기 위해서는 플랫폼 관리자에게 삭제를 요구하거나 민사소송을 통해 영상의 삭제를 청구하여야 하는데, 이마저도 플랫폼 관리자로부터 영상 삭제를 거부당하기 십상이고, 영상이 업로드되는 순간 빠르게 퍼져나가는 사이버공간의 특성상 긴 시간이 소요되는 소송을 통해 영상을 삭제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효과적으로 영상 차단을 청구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개선하거나 명예훼손 영상 신고 및 감시 절차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관을 설치하는 등 실질적인 대안에 대한 제도적 고민이 필요하다.

위와 같은 제도적 뒷받침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보를 접하는 이용자 스스로 정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키우는 것이다. 타인에 관한 명예훼손 정보를 공유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형사상 처벌이 될 여지가 있을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잘못된 행동임을 명심하고, 한 번 더 고민하고 진위 여부를 확실하게 확인한 뒤 정보를 공유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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