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광(광주광역시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교육학 박사)

나는 책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 평소 술, 담배를 하지 않는 대신 책값을 그 이상으로 썼다. 나는 책을 빌려서 보는 것을 싫어하고 필요한 책은 반드시 사서 소장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책을 빌려주는 것을 매우 불편해했고, 불가피 빌려주면 기한을 정해 반드시 책을 받아냈다. 책을 사면 그 즉시 속 표지에 구입한 날짜와 내 서명을 남기고, 한 장 한 장 꼼꼼하게 정독했다. 책을 읽기보다 책을 먹는다는 심정으로 책에 담긴 지식을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나의 책에 대한 집착과 애정은 어릴 적부터 상당히 강했다. 서재에 책이 쌓여가는 것을 볼 때마다 뿌듯함을 느꼈기에 책을 절대 버리지 않고 꾸준히 모았다. 8살 때 읽었던 만화 위인전부터 중학교 때 어머니가 사주신 인생 철학에 관한 책, 고등학교 때 보았던 세계 고전 문학과 ‘수학의 정석’ 시리즈 등 학창 시절에 보았던 의미 있는 책을 버리지 않고 보관해 왔다. 조정래 선생의 대하소설 ‘태백산맥’과 ‘아리랑’은 각 권을 따로 사서 읽으며 전권을 모았고, 대학 시절 교육학 전공 서적부터 현대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을 사서 읽으며 책장에 모아 두었다.

대학원에서 학문을 시작하면서부터 쌓여가는 책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석·박사 과정 전공 서적과 레포트 및 논문을 쓰기 위한 참고 서적 등이 급격히 늘면서 책을 책장에 꼽지 못하고 바닥에 쌓아 두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방은 저장강박증 환자가 사는 집처럼 온통 책으로 쌓여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가족들은 읽지 않는 책은 제발 버리라고 다그쳤지만 나는 요지부동했고, 공간이 좁아 더 이상 서재를 들일 수 없게 되자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삿날, 이사업체 직원들은 내 책을 옮겨 담는 것이 너무 힘들었는지 무슨 책이 이렇게 많냐고 투덜댔지만, 난 그 말에 오히려 자부심을 느꼈다. 그렇게 모아 온 책이 대략 4천권 정도 되었다. 정확히 세어 볼 수도 없는 수량이었고, 아마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꼭 필요한 전공 서적 몇 권만 남기고 그 많은 책을 다 버렸다. 글 쓰고 사색하기 좋아해서 스스로 서생(書生)이라 칭했던 내가 보물처럼 아끼던 그 책을 다 버린 것이다. 서생! 서생은 글만 읽어 세상일에 서투른 선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사람들의 관심사에 무심하고 책 읽고 글 쓰는 삶을 지향하는 내 성향에 딱 들어맞는 용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지금껏 내가 읽은 책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어떤 일을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세상과 괴리된 서생의 존재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이 나의 삶을 반추하게 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지식은 세상을 토대로 만들어졌고, 그 지식은 다시 세상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 서재의 책은 세상과 나를 분리시켰던 고상한 장벽이었다. 평소 나는 세상이 좀 더 따뜻하고 평안하기를 바랐다. 내 것을 위해 남의 것을 빼앗고, 권모술수를 부리며 자신의 배를 채우고, 비열한 공작과 술수를 써가며 작은 이익을 탐하는 세태가 싫었기에 고고한 척하며 지금껏 서생으로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명언처럼 세상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 결합되었을 때 비로소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껏 더 좋은 세상을 위한 반쪽짜리 삶을 살아온 것이다.

우리 사회 모든 영역이 그러하다. 복잡하고 전문적인 이론만으로 그 분야가 발전할 수는 없다. 어떤 분야이든 현장의 경험과 감각이 담긴 실제가 이론과 결합했을 때 변화와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진짜 전문가는 자신의 분야에서 끊임없이 공부하며 고민하고, 현장에서 부단히 경험하며 실제적 삶을 살아야 한다. 이론과 실제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는 것은 공허하거나 위험할 수 있다.

특히 교육분야는 이론과 실제의 결합이 매우 중요하다. 교육은 관계를 통해 사람을 키우는 활동이며 매우 다양한 사례 속에서 학생에게 맞는 최적의 길을 찾아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은 이론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학교 현장의 실제적 사례를 다양하게 파악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즉 단순히 교육학 이론만 강조해서도 안되고, 오로지 현장만 중시해서도 안 된다. 이론과 실제가 균형감 있게 결합되어야 교육의 변화와 발전이 가능한 것이다. 교육에서도 서생의 문제인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은 반드시 필요하다. 교육에 종사하는 나부터 균형감 있는 태도로 우리 교육과 사회와 구성원을 바라보며 서생의 틀을 벗고 현실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교육 전문가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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