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일(남도일보 대기자)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끝 난지 일주일째다. 대선 당일 저녁. 방송사 출구조사를 시작으로 피 말리는 접전을 지켜보면서 많은 국민이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광주도 그랬다. 결국 대선은 역대 최저 득표 차인 0.73% 포인트 차로 승패가 갈리면서 광주는 우울했다. 광주의 선택이 실패한 것이다. 며칠동안 밥상머리에서, 회식자리에서, 각종 SNS에서 서로 위로하는 등 안타까움이 넘쳐났다. 국민 절반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이지만 승자독식이다. 당장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예산 협의차 중앙부처 출장을 가야 하는데 부처 공무원들의 태도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동안은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잘 도와주고 힘들면 청와대든 국회든 SOS를 칠 수 있는 인적 창구가 많았는데 이제 그 창구가 거의 없어졌다며 걱정이 많다. 여대야소에서 하루아침에 여소야대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에게 85%의 몰표를 준 광주는 대선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패배했지만 지역감정의 벽에 무너졌던 과거보다는 차분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이번 대선은 김대중 때부터 호남을 안방처럼 여긴 민주당에도 뼈 아픈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윤석열 당선인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도 다양해졌다.

대선판을 복기해 보면 역대급 양강 후보에 대한 비호감 대선이라는 인식에서 호남 역시 크게 예외는 아니었다. 선거 막판까지 줄곧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호남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85%가 넘는 몰표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대선정국을 강타한 윤석열·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는 호남을 일깨우는 변수였다. 민주당에 실망하거나 민주당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까지 이 후보 지지로 옮겨가는 역풍을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볼 때 민주당은 패했지만 나름대로 선전한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대선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호남에서 60∼70%대에 그쳤었다. 실제 대선에선 광주 84.8%, 전남 86.1%, 전북 82.9%로 윤석열 당선인에 압승했다. 반면 윤 당선인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공언대로 30%의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광주 12.7%, 전남 11.4%, 전북 14.4%의 득표율을 보였다. 그래도 역대 보수정당 대선후보 중 호남에서 처음으로 두 자릿수 득표율을 기록했다. 만약 후보 단일화가 없었다면 호남에서 윤 당선인이 더 약진했을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점은 광주 남구 봉선2동 제5투표소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38.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봉선 2동의 윤 당선인 득표율도 27.1%로 광주 전체 득표율 12.7%보다 2배 이상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이곳은 고가 아파트 밀집 지역으로 종합부동산세 납부 대상자들이 많은 곳이다. 윤 당선인의 진정성이었든, 이준석 대표의 구애였든 국민의힘에는 긍정적 시그널로 읽힌다.

광주에서 지난 30년이 넘는 동안 대선에서 보수정당의 득표율을 보면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7.7%의 득표에 그쳤고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8.5%를 기록했다. 앞서 13∼16대 노태우, 김영삼, 이회창에 이르기까지 보수당 후보의 득표율은 1.7∼4.8%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런 기록들을 크게 뛰어넘는 득표율을 보인 것이다. 이는 세상이 바뀌고 있음을 뜻하고 세대교체에 따른 변화의 조짐이기도 하다. 광주에서도 윤석열 당선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 당선인의 비서실장, 인수위원장, 그리고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원장 등의 인선을 보면서 그의 새 정부 구상을 읽고자 함이다. 윤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호남 관련, 많은 공약을 했다. 지켜볼 일이다. 특히 대선 종반 윤석열 후보의 광주의 대형 복합쇼핑몰 건립 공약은 광주시민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광주에는 다른 광역시·도에는 있는 규모가 큰 스타필드, 롯데몰, 코스트코 같은 창고형 할인매장이 없다. 2015년 광주신세계가 호텔 등이 포함된 복합쇼핑몰을 추진하려다 지역 상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계획을 중단한 바 있다. 민주당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 복합몰 추진을 말하지만 궁색하다.

윤석열 당선인이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상생 모델을 어떻게 만들어 현실화시킬지 관심이 쏠린다. 그리고 20년 넘게 역대 대선 후보들은 물론 민주당 출신 시·도지사 후보들이 노루 뼈 우려먹듯 한 광주 군 공항 이전 공약도 어떻게 할지가 지역민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다. 대선이 끝난 지 일주일째지만 윤 당선인이 “국민의 뜻을 받들고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하니 지켜보자. 또 “어느 지역에 사느냐와 관계없이 국민들이 기회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거나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청산하는 의미에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밝힌 대목도 흥미롭다. 호남에서도 윤 당선인이 “참 잘하고 있다”며 박수받기를 바란다. 그러면 다소 느리지만 닫힌 마음의 빗장을 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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