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헌(선한병원 면역센터 의학박사)

 

정성헌 선한병원 면역센터 의학박사

우리는 단일 생명체가 아니다. 최소한 수십조에 달하는 세포들이 모여서 형성된 복합생명체다. 그런데 우리몸에는 최소한 우리몸의 세포수만큼이나 거의 동수에 가까운 미생물들이 우리 몸에 붙어서 함께 살고 있다. 다행히 이들은 거의 대부분 우리에게 우호적이다. 오히려 우리는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다. 우리를 지키는 면역 관련된 일들 중 상당부분을 이들 세균에 의존하고 있으며, 더욱이 음식물 소화는 이들이 없으면 우리는 할 수가 없다.

우리의 장속에는 약 3만6천종류의 세균들이 이웃으로 있으며 이들은 적어도 39조에서 100조 정도의 숫자이고 총 무게는 2~2.5g이나 된다. 인간 Genome이 2만3천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장내 미생물 이웃들은 이에 100배 가까운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복합 탄수화물을 장속에서 처리하는데 필요한 효소를 17가지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장내 미생물들은 6만가지쯤 가지고 있다. 이들은 그러한 유전자의 다양성을 가지고 우리가 다양하게 먹는 식품들을 소화할 수 있도록 돕고 있고, 여러 가지 우리에게 유익한 호르몬이나 물질들을 만들어 우리의 면역을 건강하게 지켜준다. 우리는 우리의 소화기능을 비롯해 면역기능, 호르몬 생성 기능등을 미생물들에게 용역을 주고 있는 셈이다.

‘숙주 조종’은 자연계에 널리 퍼져 있다. 숙주 조종이란 내 몸안에서 살고 있는 나와는 다른 생명체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나를 조종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고양이 담낭에 사는 기생충이 쥐에 감염이 되면 그쥐는 고양이를 무서워 하지 않는다. 마치 “나를 잡아 먹어 주세요” 하는 식으로 고양이 앞에 나선다. 기생충이 고양이 몸속으로 들어 가려면 쥐를 먼저 감염시키고, 그 쥐가 고양이에게 잡아 먹히는 것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감기 바이러스는 사람을 감염시키면 감염된 사람이 기침을 해대며 돌아다니게 만든다. 자신들을 퍼트려야 하니까. 뚱보균에 감염된 사람은 단것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장속의 뚱보균이 단것을 먹으라고 시키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숙주 조종의 증거는 책으로 수십권을 써댈 수 있다.

실제 면역 세포들의 80%는 장내 세균의 영향을 받는다. 게다가 장은 ‘제 2의 뇌’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마치 별도의 신경체계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Enteric Nervous System이라고도 표현한다. 장에서는 30가지 이상의 신경 전달 물질을 생성한다. 우리가 행복 호르몬이라고 하는 세로토닌은 장에서 90%가 만들어 진다. 도파민의 절반도 장에서 만들어지며 미주신경(vagus nerve)를 통해 장은 뇌와 끊임없이 대화한다. 장누수 증후군으로 장의 장벽이 무너지면 독성 물질들은 뇌로 들어가 우리의 감정을 지배해서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삶의 의욕도 떨어지며, 집중력이나 기억력도 손상 받는다. 당연히 수면의 질도 떨어트려 불면 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일부 학자들은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 아이들의 자폐증상도 이러한 병리로 설명한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 장속의 세균들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공생 관계에 있다. 우호적인 균과 우호적이지 않은 균의 비율은 대략 8대 2, 혹은 7대3 정도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지배적인 세균 집단은 Bacteroidetes와 Firmicutes로 구성되는데, 우리는 살면서 주변 환경에 의해 이러한 세균집단의 변화를 격는다. 지나친 청결은 우리가 우호적일 수 있는 세균 집단과 상호 작용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심한 편식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미생물군과 MOU를 잘 맺는 것은 우리의 건강을 위해 중요한 일이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이다. 어떤 음식을 먹는가는 우리의 유익균들에게 어떤 먹이를 주느냐와 같은 문제이다. 가공된 식품들, 지나친 육류의 섭취, 오메가-3와 오메가-6의 심한 불균형, 삶의 스트레스, 불규칙하고 무분별한 식사 시간, 이러한 것들은 유익균과 유해균의 균형을 파괴한다. 장기간의 복약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약물들 중에 이 유익균과 유해균의 균형을 깨트리는 약물들이 많다

내 장속의 미생물 조합들은 균형 잡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요즘은 간단한 검사로 가능하다. 만일 균형 잡혀 있지 않다면 먼저 내가 먹는 음식을 바꾸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음식먹는 습관, 시간 등 식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적절한 운동은 이러한 식습관을 바꾸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것으로도 불안하면 잘 만들어진 prebiotics 제품들을 보조적으로 함께 먹어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소는 건초더미만 먹고도 소고기와 우유를 생산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소는 4개의 위장 속에 아주 훌륭한 이웃들을 두고 있다. 그들이 건초더미들을 영양소로 바꾸어 주기 때문이다.

우리 장속의 이웃들, Microbiome을 화나게 하지 말라. 우리몸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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