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노반 신부가 30대쯤 돼 보이는 남자를 데리고 이기반의 은신처를 찾았다. 이기반은 도노반 신부가 마련해준 은신처에서 지내고 있었다. 목포방송국 언덕 아래 허름한 이층집 골방이었다. 집은 산정동 천주교회당 빈 공터 옆 마을에 자리잡고 있어서 도노반 신부가 쉽게 손을 뻗칠 수 있는 곳이었다. 가파른 언덕의 지형 조건을 이용해 지은 집이라 아래 골목길에서 보면 2층집이고, 이층 골목길에서 보면 단층집이었다. 이런 집은 쫓길 때 도망가기 좋은 구조다. 위층에서 덮치면 아래층으로 내려가 골목길로 사라지고, 아래층에서 쳐들어오면 2층 위쪽 골목길로 도망갈 수 있다. 그들이 방에 들어가 마주 앉자 도노반 신부가 말을 꺼냈다.

“성골롬반병원 내과의사신디, 이기반씨 건강체크 좀 해돌라고 해서 데리고 왔네.”

“전성준입니다.”

30대 남자가 머리를 꾸벅했다. 아랫 사람한테도 예의를 깍듯이 차리고 있었다.

“진맥 좀 해보실랑가?”

그러자 전성준이 이기반을 향해 물었다.

“한번 봐드릴까요?”

“괜찮습니다. 건강이 좋아졌습니다. 숨어서 지내니 답답할 뿐이죠.”

“하긴 몸을 살펴달라는 것은 구실이고, 신부님이 이기반 학생 소개시켜줄 요량으로 나를 데리고 온 것 같습니다.”

전성준이 말하자 도노반 신부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응수했다.

“하여간 전 선생은 못된 사람이여. 왜냐하면 도둑놈잉깨. 나가 왜 이런 도둑놈을 좋아하는지 몰겄어.”

느닷없는 말에 이기반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으나 전성준은 개의치 않았다. 도노반 신부가 말을 이었다.

“우리 성골롬반병원이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싸게 치료를 해주는 병원이라는 것은 알제? 그란디 위암이나 간암 등 큰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장기 입원하다 보면 치료비가 솔찬히 나와부러. 환자들은 대개 도서지방에서 온 사람들인디, 가난한 사람들이여. 농사 몇뙈기 짓거나 바다에 나가서 물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인디, 이런 사람들이 치료가 다 끝나도 집에 돌아가들 못해. 왜냐하면 돈이 없승깨. 그래서 볼모로 잡혀불제. 고것이 하세월인 사람도 있고 말이여. 이때 저 사람이 딱한 환자를 새벽에 나가는 청소차에 몰래 실어서 내보내버린당깨. 운전수를 구워삶아 가지고 마디리 포대에 환자를 집어넣어 끈타블로 짬매서 짐짝처럼 쓰레기칸에 싣고, 짐도 보로 박스에 담아서 보내버려. 세상에 이런 도적놈이 다 있소? 병원은 어떻게 운영하라고…”

이기반이 웃는데, 전성준이 정색을 했다.

“왜 그러세요? 신부님이 주범 아닙니까? 나는 시키는대로 따라 했을 뿐이고요.”

이기반아 웃으며 받아넘겼다.

“신부님이야 그렇게 하고도 남을 분이죠.”

“음해하는 것이여?”

“음해가 아니고 정직하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하하.”

해방 직후 산정동 성당은 아일랜드 신부와 수녀들이 들어와 시무했다. 이를 계기로 아일랜드에 본부를 둔 성골롬바노 외방전교수녀회에서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에 의료시설이 부족한 이 지역 주민의 질병퇴치와 건강증진,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골롬반병원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결핵환자를 전문으로 치료했으나 결핵환자가 감소하자 1968년 학교법인을 설립해 성신간호전문대학 부속병원으로 전환하면서 일반종합병원으로 규모를 확장했다. 직원도 350명이나 되었다. 성골롬반병원은 개원 초기부터 거의 모든 환자에게 무료 진료를 실시했다. 일반종합병원으로 확장한 뒤에도 의료보장제도(의료보험·의료보호)가 실시되기 전까지 실비의 진료비만을 받아 지역 주민들에게 적잖은 의료 혜택을 주었다. 2000년 목포가톨릭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2002년 9월 운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산정동 천주교회 본당은 광주대교구의 첫번째 본당이었다. 1956년 광주로 옮겨가기 전까지는 산정동 천주교회가 광주대교구 역할을 대행했다. 한국전쟁 때 광주교구장 패트릭 브레넌 몬시뇰 신부, 산정동 천주교회 본당 주임신부 토머스 쿠삭(한국명 고도마), 보좌신부 존 오브라이언(한국명 오요한)이 순교했다. 이들은 1950년 8월 북한군에게 체포되어 북으로 압송되던 중 대전에서 피살되었다. 이들 중 교구장 몬시뇰 신부는 미국인, 고도마 주임신부와 오요한 보좌신부는 아일랜드 출신이었다.(이상 ‘목포시사’ 등 자료 인용)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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