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석(목포과학대학교 교수)
5월, 가정의 달이다. 5일 어린이날, 8일 석가탄신일·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세계가정의 날, 16일 성년의 날, 21일 부부의 날. 모든 어린이와 가정에 하느님과 부처님의 자비로운 덕이 널리 베풀어지길 빈다.
더 빈다. 건강한 몸으로 집을 나섰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아들딸과 형제자매를 둔 가정을 기억해주시라고. 이름도 남김없이 이름 없는 별이 된 그들을 잊지 말자고. 비록 치 떨리는 트라우마 한(恨)으로 그날 그 자리에 응어리졌을지라도 서로 어깨동무하자고.
가요 ‘푸르른 날’(송창식, 1974)을 듣는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가사도 음률도 부담스럽지는 않다. 청년기에 부른 노래라서 그런지, 가수의 목소리는 잡티 없이 맑다.
어느 분이 이 노래를 연습한다기에 작사자가 누군지를 살펴봤다. 어이 하리야. 그 작사자는 시인이다. 그는 1980년 5·18 광주의 참상이 적잖이 알려졌을 1987년 1월, ‘처음으로ㅡ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를 지어 바쳤다.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 /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 /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육천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나니 / 이 나라가 통일하여 흥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 쉬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 이 민족 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 1987.1.”
더 찾아봤다. 그는 1981년 2월 간선제의 12대 대통령 선거에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전두환 씨를 지지하는 라디오 연설을 했다. 그에 앞서 전두환 씨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짓밟고 1980년 9월 1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동아일보(1981.2.2.)가 보도하길, 그 시인은 연설에서 “미약한 사람으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연설을 맡아 하게 된 것을 생애의 자랑으로 생각한다”, “정치와는 상당히 멀리 있던 제가 지지연설을 하는데 대해 혹 이상하게 생각할 분이 있을 것 같으나 절대로 딴 마음을 갖고 본심과 달리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과 직접 대면해서 이야기해 본 적은 없지만, TV화면에서 말씀 도중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을 보았다. 하느님이나 단군 할아버지가 그 웃음을 내려다보았다면 같은 웃음으로 호응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 시인이 누군지, 잠깐 짐작하시기를 바란다.
작사자가 누군지도 모른 채, 가요 ‘푸르른 날’을 소리 높여 부르다가는 조선 후기의 선비 김병연(1807~1863)이 김삿갓 방랑 시인으로 정체성을 바꿔야 했던 참담한 사연을 되풀이하리라. 김 시인은 20세에 강원도 영월 백일장 때 시제로 김익순(1811년 홍경래의 난 때 평안북도 선천 부사)에 대한 내용이 나오자 그를 비판하는 글로 급제했다. 김익순이 자기 할아버지인 줄 전혀 몰랐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가요 ‘푸르른 날’에서 보이는 계절은 가을이나, 대체로 내게 푸르른 날은 신록의 5월이다. 어느 70대 의사는 40여 년이 떠나갔어도 80년 5월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수련 과정을 밟던 중 목격한 처참한 광경이 트라우마 한으로 맺혔는지, 5월에는 푸르른 나뭇잎이 핏빛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 시인이 전두환 씨를 지지하는 연설을 한 지 3개월여가 떠나간 그해 5월 27일 김태훈 다두(세례명) 민주 열사는 서울대 도서관에서 ‘전두환 물러가라’고 세 번 외치며 민주의 별로 승화하였다. 이제 그의 이름과 시는 내 청각을 자극하지 못 하리라. 역설에 가깝다. 가정의 달, 5월은 곧 ‘트라우마 한’의 대명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