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필(귀농인)

김한필 귀농인

5월 5일은 어린이날이자 여름에 들어선다는 입하(立夏)였다. 이어 21일은 부부의 날이자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소만(小滿)이다. 그러니 아직은 만물이 가득차지 않은 절기라는 의미다. 또 6월 6일은 현충일이자 보리가 익어 먹게 되고 모을 심게 되는 시기인 망종(芒種)이다. 까끄라기 망자다. 수확기가 된 보리나 밀은 까끄라기가 있다. 지금은 우리 국민이 식량 걱정 없이 살지만 필자가 어린 시절만 해도 보리를 수확하기 전까지는 식량이 달랑달랑한 집들이 많았다. 이를 일러 보릿고개라 하고, 춘궁기(春窮期)라고도 한다.

식량이 달랑달랑하다는 말과 관련한 우스갯말이 있다. 옛날에 어느 가난한 농부가 이웃 선비 집엘 갔는데 선비가 종이에 붓으로 쌀가마니 2개를 그리고 있었다. “어르신 지금 무얼 하고 계십니까?” 하자, 선비 왈 “보면 모르나 식량이 부족해서 김 부잣집에 쌀을 좀 꿔달라고 편지를 쓰고 있는 중이네” 하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선비 댁엘 가보니 정말 쌀 두 가마니가 와 있었다. 그래서 이 가난한 농부도 그 선비처럼 종이에 쌀가마니 2개를 그려 넉넉하게 사는 이웃집에 보냈다. 며칠 있으니 답장이 와서, 뜯어보니 종이에 방울 두 개가 싸여 있었다. 도무지 해석이 안 돼 끙끙 앓고 있는데 자기 부인이 하는 말이 “그 집도 쌀이 딸랑딸랑 하다는 뜻 아니 것 소” 했다는 것이다. 필자 어린 시절만 해도 춘궁기가 있었는데 그 옛날에야 어지간한 집은 보릿고개를 겪어야 했을 것이다.

이제 그야말로 농번기가 시작되는 철이다. 며칠 있으면 모내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정작 걱정스러운 것은 요즘 쌀값이 평년보다 많이 떨어졌다는 소식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유류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다른 물가도 가파른 상승세다. 그런데 유독 쌀값만이 인하라니 이해가 안 된다. 다른 물가가 많이 오르니 정부미라도 대량 방출해서 쌀값만이라도 내려서 서민 경제의 어려움을 덜어주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문제는 정부가 도시 서민 경제만을 걱정하고 농부들의 어려움은 외면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작물이 흉작이 되어 가격의 상승 기미가 보이면 정부는 촌각을 다투어 수입해 가격을 떨어뜨린다. 이래서 농부들은 맥이 빠지고 허탈해지는 것이다.

필자도 귀촌·귀농한지 6년차인데 가만히 보면 우리나라 최상급 봉은 농민이다. 농산물 가격이 좀 올라도 농민들은 그 혜택을 보지 못한다. 그 이익은 장사꾼들 몫이다. 농산물 가격이 떨어지면 농민들은 그 만큼 손해를 보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그 만큼의 이익을 향유하지 못한다. 이도 역시 장사꾼들의 몫이다. 예를 들어 한우 값이 떨어지면 그 만큼 고기 값이나 소고기 음식 값이 비례해서 떨어져야 맞는데 아예 떨어지지 않거나 비례해서 인하하는 건 기대난이다.

모든 물건 가격은 하방경직성(下方硬直性)을 가지고 있다고 하나, 이것은 우리나라 유통의 크나큰 문제점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이러한 폐단을 시정하고자 소비자와 생산자간 농산물 직거래니 뭐니 하여 노력을 해보았지만 도로 아미타불이었다. 오히려 이런 폐단을 시정하겠다고 나선 농협만 살찌운 결과만 초래했다는 항간의 말도 무성하다. 이익에는 너나 할 것 없이 혀를 대려 달려들기 때문이고 이것이 자연인이든 법인이든 할 것 없이 인(人)의 본능이 아니겠는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주 원인이라고 하지만 한편으론 코로나의 영향도 있는 듯하다. 거의 모든 소비자 물가가 큰 폭으로 올랐다. 지금 농촌에는 비료가 품귀현상을 보일 것이라며 농민들의 걱정이 태산이다. 또 각종 농자재 값이 껑충 뛰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서 외국인부들의 출입국이 어려운 탓도 있겠으나, 인부임이 너무나 크게 상승했다. 필자가 귀농했을 당시만 해도 여자인부 일당 6만원, 남자 7만∼8만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여자 12만∼13만원, 남자 15만∼16만원까지 올랐다. 2배가 상승한 것이다.

지금 농촌은 초고령사회로 접어든지 오래다. 한국인 인부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95% 이상을 외국인 인부에 의존하고 있는데 인건비가 이렇게 높아서야 인건비 인상분을 가격에 전가할 수도 없는 농산물 생산자는 농사를 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만 늘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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