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주(폴애드 대표컨설턴트)

김형주 폴애드 대표컨설턴트

레토릭(rhetoric). 우리말로 수사학(修辭學)이다. ‘웅변가, 웅변의’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이다. 수사학은 그리스 시대부터 유래되었지만, 귀족이나 학자만을 위한 학문은 아니었다. 레토릭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청중을 감화시키는 설득력이다. 쉽게 말해 ‘말을 잘하는 기술’, ‘잘 표현하는 기술’ 같은 것이지만, 정치 현장에서는 ‘잘 말하고 잘 포장하는 기술’로 의미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정치에서 레토릭을 빼고 생각할 수 없다. 정치적 레토릭은 크게 두가지다. 그중 한 가지는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 같은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국민의 시선을 끌어보려고 앞뒤 가리지 않고 내뱉는 소위 ‘정치적 거짓말’이나 ‘정치적 막말’이다. 이렇듯 정치적 레토릭은 말을 하는 주체와 상황, 장소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 정치는 말로 하는 예술이고 잘 뽑은 레토릭 한 줄이 승부를 가른다.

“문제는 경제야, 이 멍청아! (It‘s the economy, stupid!)”.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클린턴이 사용했던 선거슬로건이다. 당시 클린턴은 자신의 성추문 도덕성에 대한 고민거리를 극복해야만 했다. 클린턴의 핵심 정치고문인 제임스 카빌이 고안한 이 단순한 슬로건은 클린턴의 선거기간 내내 캠페인의 중심이 되었고 결국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한국정치에도 있다. “바보 노무현”. 2002년 대선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노무현 자신의 정치 인생을 담아냈던 유명한 레토릭이다. “그럼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이 문구는 2002년 대선의 향방을 결정지었다. 감성적이고 설득력도 충분했다. 혹자는 한국 정치사 최고의 레토릭이다고도 평가한다. 선거에서 레토릭은 자신을 잘 나타내어 가공된 이미지를 형성시키거나 미래비전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상대 후보를 규정하면서 공세적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전자의 예가 “바보 노무현”이라면, 후자는 클린턴의 슬로건이다.

문제는 레토릭에 가려진 진실이다. 특히 선거에서는 더 큰 문제다. 레토릭에 가려져 인물, 정책, 이미지 등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실체가 존재하더라도 일반 유권자는 알 수가 없다. 별것 아닌 것이라도 그럴싸한 레토릭으로 외현화시켜 그럴싸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선거캠프 전략가들은 유권자에게 선동적이고 정서적으로 잘 다가갈 수 있는 레토릭을 어떻게 잘 만들 것인가에 집중한다. 그런 레토릭이 경쟁후보와의 이미지를 차별화시키고 선거를 승리로 이끈다고 보기 때문이다.

6월 1일 지방선거가 8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공보, 벽보, 길거리현수막, 언론보도, 유세 등에서 수없이 많은 레토릭이 쏟아져 나온다. 그 레토릭들은 자신을 정의하거나 상대 후보를 규정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말(言)로 하는 선거운동의 폭을 대폭 확대한 최근의 선거에서는 너무나 많은 레토릭에 유권자들은 레토릭에 가려져 있는 진실을 접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패배를 직감한 일부 후보들은 레토릭을 넘어 허위사실까지 공표한다. 막판이니 막 질러보자는 심상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사실과 다른 허위사실 공표 위반은 공직선거법에 의해 엄하게 처벌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레토릭에 가려진 진실을 보기 위해선 유권자인 우리들의 노력이 조금은 필요하다. 후보들이 주는 정보가 아니라 후보자의 이력과 정책,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 등을 살펴보고 결정하자. 뽑아놓고 후회하면 무슨 소용인가. 진실을 감추려는 레토릭과 가짜뉴스에 대해선 조금만 살펴보면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진실은 명확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4년간 내가 살고있는 지역의 대표자를 뽑는 것인데, 준비된 선택지를 그냥 주는 대로 받아드리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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