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남(남도일보 주필)

오치남 남도일보 주필

‘무혈입성(無血入城·피를 흘려 싸우지 아니하고 성을 점령하여 들어감)’, ‘유선완박(유권자 선거권 완전 박탈)’, ‘13일간의 식물 후보(공식선거운동 금지)’…. 지난 13일 6·1지방선거 후보자 등록이 마감되면서 이른바 무투표 당선과 당선인을 빗댄 표현들이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지방선거 무투표 선거구는 321곳, 후보자는 총 509명이다. 지방선거 역대 최대 규모다. 후보등록 이후 사퇴·등록무효 등의 사유로 무투표 선거구 및 후보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무투표 당선인은 특정 정당 독식 구도가 굳건한 지역 중심으로 대거 배출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가운데 무투표 당선인은 1명도 없다. 하지만 기초단체장은 모두 6명이다. 이 가운데 광주·전남과 대구·경북이 각각 3명이다. 박병규 광주 광산구청장, 김철우 전남 보성군수·명현관 해남군수, 류규하 대구 중구청장·이태훈 달서구청장, 김학동 경북 예천군수 등이다. 광역 및 기초의원 당선인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심장부인 영호남에 집중됐다. 강력한 양당 체제, 특정 정당 쏠림 현상이 빚은 비극이다. 공교롭게 무투표 당선인 가운데 광주·전남 2명, 경북 1명이 선관위에 각각 2건 이상의 전과기록을 등록했다. 현재 모두 세금 체납은 없지만 1명은 최근 5년간 체납액을 18만2천원으로 신고했다.

광역의원도 예외는 아니다. 광주광역시의회 20개 지역구의 55%인 11명의 무투표 당선인 가운데 전과기록자는 3명이다. 최근 5년간 체납액신고자도 2명이다. 55개 지역구의 47%인 26명의 전남도의원 무투표 당선인의 경우 절반 가까운 9명이 전과기록을 등록했다. 다만 최근 5년간 체납액신고자는 1명에 그쳤다.

대구·경북 무투표 당선 광역의원은 더 심각했다. 대구광역시의회 29개 지역구의 69%인 20명의 광역의원 무투표 당선인 가운에 7명이 전과기록자다. 최근 5년간 체납액신고자는 4명에 이른다. 55개 지역구의 31%인 17명의 경북도의회 무투표 당선인 가운데 무려 59%인 10명이 전과기록자다. 7건의 전과기록자도 1명이다. 최근 5년간 체납액신고자는 3명으로, 이 가운데 5천만원을 넘은 당선인도 1명이다. 각자 피치 못할 사정이 있겠지만 유권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무투표 선거구 후보자는 공직선거법(제275조)에 따라 무투표 당선이 확정된 때부터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해당 후보자의 선거공보도 발송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헌법에 보장된 유권자의 참정권을 빼앗는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무투표 당선인은 특권 아닌 특권을 누린다. 다른 후보처럼 운동화 밑창이 닳도록 밤낮으로 뛰어다닐 필요가 없다. 90도로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된다. 선거비용 고민에서 자유롭다. 지역구민에게 당선 인사 등을 하지 못해 전후사정을 잘 모르는 유권자들로부터 종종 핀잔을 듣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한다는 이른바 ‘말년 병장’처럼 행동해야 한다. 당선증을 받기 전까지 자칫 잘못 움직였다간 공직선거법에 걸려 당선이 무효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1994년 공직선거법 제정 당시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 선거에 대해서만 적용되던 무투표 당선 제도는 2010년 1월 지자체장 선거까지 확대됐다. 지자체장 선거의 경우 2010년 이전까지는 후보자가 1명이더라도 득표수가 투표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에 달한 경우에만 당선자로 확정됐다. 이후 유권자 선거권 박탈이냐 선거비용 절감이냐를 놓고 논란이 이어졌다. 특히 무투표 당선인이 특정 정당 지지도가 높은 영호남에서 무더기로 탄생하면서 집행부와 의회 대부분이 ‘한지붕 한가족’이다. 자연스럽게 견제와 감시 기능 약화로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에 걸림돌이란 지적이다.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선거통계 시스템’에서 영호남 무투표 선거구 후보자 명부를 확인하는 내내 먹먹했다. 이 순간 가슴이 뻥 뚫린 소식을 접했다. 토트넘의 손흥민이 아시아 선수 최초로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는 낭보였다. 스포츠는 ‘일류’인데 우리 정치는 언제까지 ‘사류’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 특정 정당 독식 구도를 불식시키기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 등을 통해 무투표 당선을 줄이는 특단의 대책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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