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국책사업은 지역간 격차를 고려하지 않고, 실권자들 자의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 자기 고장에 유용한 공장을 유치하려 든다. 취업과 수입 창출로 지역민에게 이익을 돌리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경제적 효율성과 선정 절차의 정당성을 말한다. 하지만 영남권 중심의 권력 실세들의 디자인에 의해 특정 지역에서만 이루어진 측면이 강하다.

이런 때 타 지역에서도 지역의 이익을 대변할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저항하는 사이, 지역 개발과 발전의 기회를 놓쳐버릴 수 없는 것이다. 지역 낙후도를 가산점 항목으로 삼아 들이대며 싸워야 하는데, 우선 그랜드 디자인이 없다. 각론에도 충실하지 못하다. 단순히 자기 자리 지키는 거수기 역할만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하성구가 말했다.

“나라의 민주화와 지역 개발이 분리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코 대립되는 개념이 아냐. 양쪽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야. 지금 우리 고향은 갈수록 낙후되고, 개발의 지체로 국토의 절름발이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다 10년, 20년 후 완전 불구 신세가 될지도 몰라. 그러면 지역민은 삼등국민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나는 정부 지원을 강력 요구하는 팀을 가동하면서, 다른 차원으로 우리 스스로 내 고장 낙후를 면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본다. 나는 그런 아이디어가 있다.”

“아이디어? 뭔데.”

“남서해안은 역사적으로 중국 남방으로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해상권이었어. 중국과 우리 남서해안이 이렇게 함께 놀았던 개방된 해상권이었단 말이야. 북방의 흉노족으로 육로가 가로막혔을 때, 대부분의 이 지역 사람들은 무안, 목포, 영암, 해남에서 출발해 흑산도를 거쳐 중국 남부 닝보와 상하이로 가는 항로를 뚫고 해상무역을 활발히 폈단 말이다. 장보고는 이 길을 통해 동아시아 해양을 제패했고, 고려시대, 조선조 때도 벽란도에서 육지 근처를 항해하면서 흑산도를 경유해 중국 앞바다로 나가 해상 문물을 교류했지. 그래서 중국은 고대부터 달마산, 두륜산으로 이어지는 남서해안의 선경과 미황사, 대흥사, 도갑사 등이 중국에서 제일 가보고 싶은 이상향으로 삼았던 것이야. 고대 진시황제는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이 해상을 드나들었던 일화도 있어. 약탈을 일삼는 왜구와는 싸웠지만 중국과는 교류했어. 이 길을 복원하는 거야. 해상항로의 개척과 함께 중국 대륙과 동남아 교두보를 쌓는 것이지.”

“공산국가와 국교를 트다니? 우리의 적국이잖나. 그렇지 않아도 여차하면 간첩으로 몰아 구속하고 있잖나. ”

“정치를 지망하는 사회학도가 인문학적 상상력이 그렇게 부족하나. 공산국가라고 해서, 적성국가라고 해서 영원히 적국일 수 있겠나. 역사를 길게 보지 않더라도 닉슨의 데탕트 국면에서 적어도 50∼60년 안에 국교가 트이고, 해상항로가 열리고, 상품이 거래될 것이라고 확신해. 지금 닉슨 독트린 안보았나. 그 현실적 데탕트 산물로서 미국과 중국이 남북대화를 유도하고, 북파공작원을 훈련시킨 실미도 특수부대원의 북상도 막지 않았나. 그래서 실미도 사건이 터진 거구. 이렇게 미중간에 국교가 트이고, 월남전이 종식되고, 해빙이 되면 우리가 중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거야. 그러면 중국 대륙의 시장이 무한 열리는 거야. 지정학적 위치상 가장 유리한 지역이 바로 목포야. 멸치 몇 상자, 숭어 몇 상자 잡고,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사는 농경사회의 일상을 살지 않아도 된다니까.”

“지정학적 조건이 좋다고 하더라도 이미 포항, 울산, 부산, 마산에 대대적으로 공업단지가 들어서고, 중공업·중화학단지가 들어서고, 서울의 구로공단을 비롯해 인천의 남동공단, 안산의 시화, 반월공단이 들어서고 있는데 우리 고장이 비집고 들어갈 수가 있어? 무엇보다 땅도 없잖나. 그렇다고 농업이 주업인 고장에서 농토를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공장 부지로 내놓을 수도 없고. 마땅한 항구가 들어설 곳도 없고, 교통 인프라가 깔린 것도 없고…”

“교통 인프라 까는 문제는 산악지대인 영남보다 호남이 훨씬 유리해. 지도자의 의지에 달려있을 뿐이야. 땅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서남해안의 바다를 대대적으로 간척하면 되는 거야. 제방을 쌓아 항만을 만들고, 안쪽에는 수천 만명이 아니라, 수억 평, 아니 수십억 평의 부지를 조성하는 거야. 포항, 울산, 부산, 마산의 바다는 수심이 깊은데도 대대적으로 물막이 공사를 하면서 땅을 얻는데, 우리는 불도저로 뻘밭을 몇 번 밀어올리면 값싼 옥토를 그대로 만들어내는데 왜 못한다는 거야. 거기에 공항을 들여앉히고, 간척지엔 농부들에게 농사를 짓게 하는 한편으로 거대한 산업용지, 공업용지를 조성하는 거야. 경인이나 울산, 포항의 공단지역보다 훨씬 값싸고 질좋은 땅을 확보하는 거다. 물론 국책사업으로 밀어붙이면 되겠지만, 정부가 신경쓰지 않으면 우리들이 직접 나서는 거야. 우리 스스로 힘을 모아야 하고, 필요하면 재일교포 지금이든 외자든 끌어와야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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