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석(목포과학대학교 교수)

형광석 목포과학대학교 교수

꽤 자주 내 머릿속을 맴도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는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즈(Lorenz·1917~2008)가 1972년에 ‘브라질에 사는 어떤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돌풍을 일으키는가?’를 강연한 이후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아마존 열대우림에 사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평양에서 태풍을 일으킨다. 하찮은 나비의 날갯짓과 태풍을 연계하는 상상력이 대단하다.

원한은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일이 풀리지 않은 채 쌓이고 쌓이면 생기리라. 여인이 원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한 번쯤 들어봤을 속담이다. 지나친 가부장제 사회에서 적지 않은 여인이 숨죽이며 감당해야 했던 트라우마 한(恨)이 어떻게 폭발하는지를 보여준 말이다. 그 배경은 농경사회다. 세상의 큰 뿌리인 농사에서 때맞지 않은 서리는 농작물의 생장과 결실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양력 육칠월이 음력으로는 오뉴월이다. 바로 이맘때다. 지난 주말은 날씨가 불볕더위였다. 6월 초에 모내기를 한 모는 지금쯤 뿌리를 내리고 잎의 수를 불리면서 상당히 푸른색을 띤 벼로 잘 자랄 텐데, 어떤 연유로 서리가 내리면 벼 잎은 새까맣게 타버리리라. 벼는 원래 아열대 지방의 작물인지라, 찬 서리가 벼의 생육조건에 좋지 않음은 분명하겠다.

서리 맞은 작물은 소생할까? 6월 중순에 만난, 고향에 내려가 농사에 재미를 붙인 친구는 말하더이다. 5월 초에 서리가 내려 밭작물이 시들시들했다. 맥을 못추고 소생하지 못했다. 어떤 작물은 겨우 회복했는데도 생장이 느렸다. 찬 서리 맞고도 일어섰으니, 그 작물은 우량품종일 텐데도 그랬다.

‘새파란 하늘 저 멀리 / 구름은 두둥실 떠가고 / 비바람 모진 된서리 / 지나간 자욱마다 맘 아파도.’ 이는 가곡 ‘내 맘의 강물’의 일부다. 된서리가 얼마나 모질면, 그 지나간 자욱마다 치유하기 힘든 상처가 서로 이어지겠는가.

농사짓는 분은 대체로 자연에서 배우고 실천한다. 그러기에 성인에 가깝다. 이는 평소 나의 생각이다. 그 친구는 서리 맞은 작물의 변화를 보면서 우리나라 청년의 장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를 고민했다고 하더이다. 청년은 지금 된서리에 노출됐을까?

유치원과 초·중·고 시절에 온 가족이 돈과 노동을 집약한(intensive) 사실상의 훈련에 가까운 교육을 받고, 진학한 대학에서도, 심지어 대학 졸업을 연기하기까지 하면서도,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돈과 노동의 투입은 끊이지 않는다. 그 투자한 자원은 언제쯤 청년의 손안으로 되돌아올까? 마땅하고 괜찮은 일자리가 보이지 않으니, 취업할 능력은 갖췄는데도 취업할 의지가 샘솟지 않는다. 그렇다면, 취업하지 않은 청년은 자발적 실업자란 말인가? 그런 인식이 없지는 않다. 혹자는 청년의 눈이 높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청년은 부모 세대보다 키가 크니, 의당 눈이 더 높지 않겠는가. 그게 세상의 발전이겠지요.

취업취약계층은 노동시장 여건상 취업하기 어려운 계층이다. 그 계층에 저소득층, 장애인, 결혼이민자, 여성 가장, 6개월 이상(구직신청일 기준) 장기실직자 등이, 넓게는 고령자, 경력중단 여성 등도 들어간다.

청년의 일부는 취업취약계층에 속한다. ‘2020년 취업취약계층 범주’에서 최근 6개월 이내 교육기관 재학생이 아니면서 사업자에 고용된 사실도 없는 만 15세∼만 34세 청년을 ‘6개월 이상 장기실직자’로 본다. 이런 처지의 청년을 주위에서 목격하지 않는 행운을 누린 분은 없으리라. 부모 세대보다 훨씬 풍족하고 양호한 환경에서 자란 청년이 적잖이 취업취약계층이라니, 말이 되는가. 거북한 표현이나, 농사짓는 친구의 걱정처럼 청년이 된서리를 맞고 삶에 대한 의지와 원동력을 다시 일으키기 쉽지 않다는 뜻이겠다. 여성 청년도 예외일 리 없다. ‘오뉴월 서리 효과’라 부르고 싶다.

나비효과는 얼른 이해하기 힘들어도 ‘오뉴월 서리 효과’는 잘 보인다. 청년은 된서리를 피할 정책이 장기간 일관되게 지속될 때, 연애·결혼·출산·양육·세대재생산에 대한 의욕을 보이리라. 그런 정책으로 무너진 출생생태계는 서서히 복원되고 경제의 궁극적 변수인 인구의 자연 감소폭이 줄어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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