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보(광주시립미술관장)

전승보 광주시립미술관장

“모든 것에는 아름다움이 있지만, 모두가 그 아름다움을 보는 것은 아니다(공자)”라고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과도 서로 통하는 측면이 있지만 반드시 그런 뜻만은 아니다. 아름다움이란 단어는 직감(본능)으로 다른 유사한 것들과 구분해 준다는 의미를 가지는데, 알아서 ‘탈’이 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다섯 살 무렵 필자에게 기억이 처음 시작된 사건이 떠오른다. 비 갠 후 길 위에 떨어진 기름이 햇빛으로 빚어낸 영롱한 오색빛깔을 만난 때였다. ‘보잘 것 없는 곳에 엄청난 것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 어머니에게 말했더니 뭔가 시시하다는, 다 알고 있다는 투의 대답을 듣고서는 얼마나 낙담했는지 모른다.

세월이 흐른 후 ‘구별짓기(부르디외)’ 개념에서 공자님 말씀을 이해했고, ‘폐사지답사가 문화유산답사의 백미’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더 깊이 느끼게 되었다. 폐사지를 볼 때 일어나는 감동은 사건의 역사적 지식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감성과 이성의 영역이 부딪히며 정서를 고취시킬 때 일어나는 상상력 때문이다. 미술관은 바로 그런 일이 펼쳐지는 장소이다. 다만 폐사지 보다는 친절하겠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감동에 해석을 필요로 하는 ‘이미지와 개념’들이 살아있는 장소다. 미술관에서 근무한다는 일이 쉽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다.

1992년 8월에 광주시립미술관이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이립(而立)의 나이 30년이 되었다. 공자가 학문의 기초를 세웠다는 나이다. 아직은 ‘판단에 혼란을 가져오지 않는 불혹’은 아니지만, 전국 최초의 공공미술관으로서 ‘좋은 영향력의 통로’가 되는 역할에 게으르지 않았다. 문을 열면서부터 전국의 예술가들에게 기증 받은 작품으로 미술관 등록을 하였고, 연이은 재일교포 하정웅 선생의 작품 기증은 광주시립미술관 명품 컬렉션의 기반이 되었다. 그 외에도 미술관교육을 비롯해 지역미술진흥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프로그램들은 아직은 미술관문화의 개발단계인 우리 사회에 대중들의 접근성을 높여주고 미술관 문턱을 낮춰주는 역할을 해왔다. 지난 30년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앞 선 세대들의 ‘꿈과 열정’이 새겨져있고 그 헌신적인 노력으로 오늘의 성과들이 열린다는 생각이다.

‘도시의 감성을 풍요롭게, 예술의 창의성을 나누는 미술관’으로 광주시립미술관의 비전을 설정했지만, 뜻하지 않은 코로나19 사태로 2년 반이 넘게 시민들의 미술관 방문은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스마트뮤지엄을 실현하기 위한 디지털미디어 활동의 확장은 새로운 미술관의 역할을 기대하게 한다. 특히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의 출범은 지난 10년간의 모든 성과를 이어받아, 아직은 낮은 단계이지만 실현의 장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립’의 나이가 미술관 곳곳에 스며있다는 생각이다. 지난 4년간 우연한 관찰로 시작된 아이디어를 미술관 직원들과 주거니 받거니 대화로 이어가다 마침내 ‘아시아예술정원’사업이 된 것도 그렇고, 미술관 숙원 사업이었던 ‘전시실의 항온항습 설비 구축’과 ‘하정웅미술관아카이브센터’ 건립 사업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렇다.

모든 새로움의 출발은 ‘관찰’에서 시작된다. 우연한 발견을 허투루 여기지 않고 생각을 거듭하고 주변의 의견을 모아나가면 반드시 길이 나타난다. 어린 아기가 빗물 구멍에 고인 기름의 오색찬란한 색채의 향연이 왜 감동으로 다가왔는지를 스스로 알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놀라운 체험과 같은 것은 빛의 섬광처럼 다가오지만 그 경험의 여진은 오랫동안 남는 법이다.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의 관찰이 시작되고, 남겨진 여운의 힘으로 관람객들은 새로운 태도와 문화를 형성해 갈 것이다. 미술관 문화는 일상의 힘이다. 개관 30주년을 맞아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광주지역 작가들의 놀라운 성장을 보여준 전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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