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노무 새끼,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너 시방 그걸 말이라고 하냐? 인정이라는 것이 손톱만큼도 없냐고? 약자를 벌레 취급하는 놈은 인간이라고 볼 수 없어. 만물의 영장이 아녀. 그런 것들은 관청 놈들 하나로 족해야. 그란디 니가 언제쩍부텀 고관대작된 것처럼 불쌍한 사람들 깔아보고 지랄이냐? 그것이 니가 말하는 정의냐?”

그런다고 사람들 보는 앞에서 사람을 칠 일은 아니었다. 화가 치민 김구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오성공의 멱살을 잡았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아무리 사정이 그렇더라도 개는 제대로 쳐야 할 거 아니냐. 그런 다음 문제 풀 일을 생각해야지, 공권력은 무조건 나쁘고, 서민은 정당하다고 모함하는 것은 나쁜 분석이지. 이런 걸 정당하다고 하면 나라 운영이 어떻게 되겠나고?”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제. 인간으로서 최소한 품위를 유지하고 살만큼 나라가 보장을 해줘야 한다, 이런 말이란 마다.”

“이런 판자촌에서 품위를 유지한다고?”

“너는 당초 말귀를 못알아 묵어야. 풀죽을 먹고, 천막 치고 살아도 인간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단 말이다. 오죽하면 그렇게 살겄냐? 농촌에서는 더 이상 먹고 살 것이 없승깨 서울로 모여들었고, 그렇다고 자본력이 있냐, 기술이 있냐. 우선 산비탈에 집을 짓고 살면서 다음을 대비한 것이제. 고것이 정당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입구녕이 포도청 아니냐. 너는 언제나 꼰대 흉내를 내버링깨 나가 좀 빈정이 상해버린다.”

김인자가 가로막았다.

“싸울 일이 아니요.”

“맞소. 그만들 두시오.”

주민들이 맞장구쳤다. 50대 아주머니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아주머니가 숨넘어가는 소리로 외쳤다.

“당신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오. 우리 판자촌 사람들을 경기도 광주대잔지에 내다버린다고 하지 않나요. 중부면에 서울 판자촌 사람들을 쓰레기처럼 마구 부린다고 난리가 아니라니까요. 여기에 우리 판자촌 사람들이 끌려간다니까요.”

광주대단지는 이미 꿀렁거리고 있었지만, 금호동 판자촌 사람들을 화물차에 실어다 부린다는 말을 듣고 모두들 분개했다.

“갑시다. 데모에 동조합시다.”

그러나 김구택은 이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생각해보시오. 당신들 땅에 어떤 사람이 몰래 집짓고 살면 허용하겠습니까? 불쌍한 우리는 무조건 억울하고, 관청 놈들은 무조건 나쁘다는 식은 맞지 않소. 대한민국 사람들이 너도나도 서울로 들어와 산비탈, 언덕, 개천변, 빈 땅에 천막 치고 살면 뭐가 되겠습니까. 이러다 보면 나중에 사회적 비용이 더 든다니까요. 알 것은 알고 덤벼야지 무조건 까탈 부린다고 되는 건 아닙니다.”

주민들의 시선이 날카롭게 김구택에게 퍼부어지고 있었다. 그 따위 말은 당장 생존에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에겐 허무맹랑한 말이라는 표정들이었다. 오성공이 한심하다는 듯 김구택을 밀어내며 말했다.

“시방 여기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이 영원히 살겠다는 것도 아니고, 형편 나아지면 나가겠다는 것 아니냐. 철거 쪽지와 계고장, 경고장 몇 번 날린다고 정부가 할 일 했다고 보면 큰 오산이제. 먹고 살아갈 근본이 안되어있는디, 어떻게 나가겠냐. 하긴 너는 목포 뒷골목에서도 군림하고 살았제. 그런 니가 서민의 눈물을 알 리가 없겠지만, 그럴수록 인간이 되거라. 현실에 맞지 않는 헛소리 그만 씨부리고 당장 중부면으로 날 따라와.”

김인자도 거들었다.

“여기 금호동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청계천, 미아리, 중랑천, 서울역 주변 판자촌을 밀어버리고, 거기에 대기업 회사 건물이 들어서고, 대신 살고 있던 가난한 서민들이 황무지에 버려진다고 하면 승복할 수 없지요. 그러니 우리 모두의 문제예요. 성남출장소로 갑시다. 지금 그곳에선 대대적으로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갑시다!”

모인 주민들이 외치고, 앞장선 오성공 김인자의 뒤를 따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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