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과장이 김구택을 잠깐 복도에 세워놓고 부하 직원을 옆으로 불러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그대로 이행할 수 있겠냐?”

“무엇입니까.”

“해방 직후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남로당 군책(軍責)으로 있을 때 생명을 건진 비결이 있다. 그 아이디어가 생각나는데, 그대로 실행할 수 있겠냐?”

“그야 명령을 어찌 거역하겠습니까.”

“좋다. 그럼 실시.”

1948년 11월 겨울의 초입, 김창룡이 이끈 육군본부 정보국 수사팀이 기밀을 탐지하고 서울 신당동에 숨어든 박정희의 집을 습격해 간단없이 그를 체포했다. 박정희는 명동에 있는 정보국으로 압송돼 모진 고문을 받았다.

이때 정보국장 백선엽, 정보과장 김점곤, 수사관 김안일, 김창룡이 박정희를 취조하면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가족사를 통해 볼 때 빨갱이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뭔가 연민이 가는 점이 있었다. 거기다 박정희는 대구사범 출신이고, 백선엽은 평양사범, 김안일은 광주사범 출신이었다. 이들 모두 보통학교(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 입대한 것도 같았다. 박정희의 춘천 8사단 시절 상관이었던 김점곤은 대공 수사과장으로 있었다. 모두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김점곤은 박정희가 국내 최초로 군사훈련 교범을 만들고, 육군 사상 최초로 교범을 토대로 군사훈련을 실시한 실력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들은 은연중 그를 구명하고 싶은데, 빨갱이라면 없애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이승만의 충견 김창룡을 설득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런데 다행히도 사냥개처럼 눈치 빠른 김창룡도 상관의 분위기가 박정희에게 우호적이란 사실을 알고, 선수를 쳐서 박정희 구명 조건을 제시한다.

“박정희가 남로당 군 계보를 털어놓도록 하시오. 계보를 불지 않으면 살려줄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해야 합네다. 이걸로 그를 구명하는 조건으로 삼지요.”

정보국은 박정희를 설득해 그의 휘하 남로당 군 계보를 불도록 했다. 남로당 군 계보가 확보되자 김창룡이 이번에는 이렇게 제안했다.

“박정희 이 자가 확실하게 전향했는지를 살펴보려면 그의 밀고에 의해 잡혀들어온 남로당 조직원들에게 일일이 면회시켜 그가 밀고했음을 알려주도록 합시다. 그러면 그는 그들의 배신자가 되는 것이고, 그리고 그 자는 다시는 남로당 군사부로 돌아갈 수 없게 될 것이오.”

이렇게 해서 그는 그의 밀고로 체포되어 들어온 젊은 장교들을 비롯한 73명이 갇힌 방을 순회했다. 김창룡에 의해 당연히 밀고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돌아왔다. 이렇게 그는 배신자가 되고, 다시는 그들의 지도자로 나서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상과 이념, 의리면에서도 확실하게 배신자로 돌아섰음을 알려주게 된다. 그는 먼 훗날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다.

“김 수사관은 오성공을 갇힌 자 앞에 세워라. 그러면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그럼 저 자를 불러오라.”

김 수사관이 오성공을 손짓으로 부르자 오성공이 뭔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어슬렁거리며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내 뒤를 따르라. 여러 말 없어야 한다.”

김 수사관이 영창 독방 문을 열고 먼저 안으로 들어가고, 뒤이어 장 과장이 오성공을 앞세워 따라 들어갔다. 김 수사관이 짐짝처럼 쓰러져 있는 검은 물체를 향해 소리쳤다.

“일어나라.”

그러나 물체는 움직이지 않았다. 짐승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였지만 형체는 분명 사람이 분명했다.

“일으켜 세우라.”

장 과장이 지시하자 김이 대번에 발길질로 그를 걷어찼다. 그제서야 검은 물체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안면이 피떡이 되어 있었고, 코가 함몰되어 있었다. 상세히 뜯어보니 바로 김구택이었다. 순간 오성공이 앞으로 달려들었다.

“가만 있어!”

장 과장이 거칠게 그를 제지하면서 덧붙였다.

“김구택 너를 밀고한 자가 이 사람이다. 확인차 데리고 와 대질시킨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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