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택은 얼굴이 두꺼비처럼 몰라보게 붓고, 눈 주변은 온통 진보라색으로 멍이 든 채 부어올랐다. 그 모습은 마치 영화 로키에서 복싱 경기를 벌이던 주인공 실버스터 스탤론이 상대방에게 떡이 되도록 얻어맞고 링 바닥에 나뒹구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 중에도 김구택이 이상한 눈빛으로 오성공을 노려보았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오성공이 “구택아, 그것이…” 하고 앞으로 나서는데, 수사관이 재빨리 그를 제지했다.

“허튼 소리 말라고 했지? 그대로 멈춰. 저놈 앞으로 나갔다간 너도 디지게 맞는다.”

그러더니 오성공을 복도로 끌어냈다. 이만큼 대면시켰으면 상호 무슨 뜻인지 알 것이라고 수사관은 믿었다. 오성공은 복도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이거이 뭐냐. 출세할라고 상경했는데 이것이 먼 미친 짓이여? 환장해서 못살겠다.

완전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수사관이 그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며 뺨을 찰싹 갈겼다.

“촌놈의 새끼, 정신차려. 충성하기로 맹세했으면 따라야지, 이게 무슨 추태냐? 똑바로 서.”

뒤따라온 장 과장이 이 광경을 보고 말했다.

“출세하는 길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친구도 배신하는 비정함이 있어야 한다. 니가 고민을 할만하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어떤 우정보다 우선하는 것이 애국이고, 국가에 대한 충성이다. 유관순 누나, 을지문덕 장군, 강감찬 장군을 보아라. 나라가 있고, 인생이 있는 것이다. 우정이 먼저고 나라가 나중이 아니다. 오성공 너의 지금까지의 행동은 애국적인 행동, 그 자체다. 애국적 청년의 표상이다. 용기 잃지 말고 지금 그대로 나가라. 알겠나?”

오성공은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방으로 안내해라.”

다음 방은 김인자가 갇혀있는 영창이었다.

“오메, 인자씨.”

오성공이 김인자 앞에서 고꾸라졌다. 삼단 같은 머리칼이 산발한 채 그녀 역시 이마가 깨지고, 콧등이 깨져 코에서는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오성공은 순간 분노가 불끈 솟았다. 이 새끼들 이럴 수 있나? 그는 누구에게든지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장 과장이 불쑥 말했다.

“누가 저 가냘픈 여자를 때렸나.”

화를 낸 장 과장 앞에서 김 수사관이 당연한 듯이 말했다.

“내가 했습니다. 전태일을 따른다나 어쩐다나. 지가 무슨 혁명가야, 잔다르크야? 김대중을 신주 단지 모신다고 했소. 김대중을 따르면 빨갱이지 뭐겠소?”

오성공이 대번에 반발했다.

“고것은 아니지라우. 우리 인자씨가 박정희 대통령 각하는 잘 알아도 김대중씨는 몰른단 말이요. 살려주쇼. 나가 이렇게 싹싹 비요.”

장 과장이 김 수사관의 뺨을 철썩 갈긴 것은 그때였다.

“이런 쌍노무 새끼, 약한 여자를 저렇게 야비하게 때려? 전태일 후계자라도 여자를 때리면 안되지.”

오성공이 한 순간에 마음이 풀렸다. 장 과장이 대신 복수를 해주는 것에 마음이 무너진 것이다. 그것도 그들의 전략이었지만 오성공은 그런 그의 행동이 감동스러웠다.

“과장님, 고맙습니다. 여자를 데리고 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이번에는 장 과장이 오성공을 걷어찼다.

“이놈의 새끼, 여자를 구타하지 말란 것이지, 내보내겠다는 뜻은 아니야. 어떻게 저런 악질을 내보낸단 말이냐. 요즘 수사관들이 실적 올리느라고 별짓을 다하는데, 이건 분명히 인권을 유린하는 일이다. 그걸 말리는 것 뿐이다. 저 여잔 좀더 수사를 하고 송치냐, 불송치냐를 가릴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오성공을 데리고 취조실로 갔다.

“너는 일단 귀가해라. 우리가 부를 때는 지체없이 와야 한다. 성남과 인천에 투입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오성공은 돌이킬수록 억울했다. 터져버린 만두속처럼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이걸 어떻게 한담? 그때 뇌리에 번쩍 스치는 것이 있었다. 서울로 올라왔다는 남궁현일과 이기호, 하성구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들이 이 위기를 구원해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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