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광(광주시교육청 장학사, 교육학 박사)

최성광 광주시교육청 장학사·교육학 박사

‘장학사’라는 직업을 알고 있는가? 2000년대 이전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세대는 장학사를 매우 높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학교에서 장학사는 일명 ‘손님’으로 불렸고, 장학사가 학교에 방문하기 며칠 전부터 교직원 전체가 ‘손님맞이’를 위한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학생들은 나무 복도 바닥의 광을 내기 위해 학급별로 줄줄이 앉아 양초 조각을 바닥에 문지르고 마른걸레로 수백 번씩 닦으며 종종 손에 가시가 박히곤 했다. 선생님은 학생들 뒤에서 무섭게 눈을 부라리며 잔꾀 부리는 아이들을 잡아내곤 했다.

어디 그뿐인가? 장학지도를 위해 수업을 공개하는 학급에서는 몇 주 전부터 당일 수업할 내용을 미리 공부하고 각본을 짜서 교사의 발문과 발표할 학생을 정해 연습을 철저히 했다. 선생님은 멀쩡한 교실 환경판을 화려하고 다채로운 형태로 새로 꾸미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평소 호랑이 같던 선생님도 장학지도를 준비하면서 긴장하고 주눅 들어 했던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은 장학사가 엄청나게 무서운 사람이라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당시 장학사는 어린 학생들이 만날 수 있는 가장 크고 높은 권력자였다. 교장-교감-부장(주임)교사-담임교사-학생으로 이어지는 학교의 권력 구조 속에서 장학사는 기존의 권력 질서를 일순간 뒤흔드는 ‘절대권력’이었다. 권위주의 시대에 학교 권력의 최말단 학생들에게 장학사의 존재는 눈도 마주치지 못할 실존하는 ‘상감마마’와 같은 것이었다. 그로 인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장학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몰라도 엄청 높고 무서운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교육계 절대권력이던 장학사의 힘은 1995년 5·31교육개혁 이후에 점차 약화되었다.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 청산과 시민사회로의 권력 이양이 급물살을 타면서 장학사의 권위도 점차 약화되었다. 이후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고 평등해지면서 교육관료의 권위주의도 점차 약해지던 중, 2010년 주민 직선으로 교육감을 뽑으면서 교육청과 학교는 보다 많은 권력을 학교 구성원들에게 이양하게 되었다.

그 즈음 장학사는 학교를 통제하고 감독하는 권력자에서 학생교육과 학교 구성원들의 교육활동을 지원하고 조력하는 지원자로 변화되었다. 최근 장학사들은 학교 방문을 최소화하고, 학교에 갈 때도 학교 구성원들 모르게 조용하게 왔다가 필요한 사람만 만나고 나오는 ‘바람’ 같은 존재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요즘 학생들은 장학사라는 직업 자체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시대가 변하면서 장학사가 ‘손님’에서 ‘바람’으로 바뀐 것이다.

각 시·도별로 새로운 교육감이 선출된 지 약 100일이 되어간다. 교육감은 지방의 가장 강력한 교육권력이다. 권위주의의 시대가 가고 있지만 교육권력이 지닌 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교육감의 권력은 시민들이 부여한 힘이며, 그 힘을 통해 교육을 바꾸라는 명령이다. 이제는 교육관료들이 누리던 권위를 학교 구성원들과 함께 나누며 소통과 협력을 통해 교육을 변화시켜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광주교육도 새로운 교육감이 선출되어 변화와 도약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교육감이 직접 나서 전체 고등학교를 방문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경청의 시간을 갖고 있다. 온라인 정책 제안, 광주교육 슬로건 공모, 광주교육 시민 대토론회, 시민협치진흥원 설립 TF 운영 등 새롭게 시작하는 광주교육은 교육 구성원 및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함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학생인권과 교권을 함께 강화하며,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확대하고, 교육청이 시민과 지역사회와 손잡고 상생하는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장학사가 ‘손님’이 아닌 ‘바람’이 된 시대에 교육 구성원과 시민이 주체가 되어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 갈 광주교육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