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덕(순천대학교 교수·여수광양항만공사 항만위원장)

김현덕 순천대학교 교수·여수광양항만공사 항만위원장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전쟁은 벌써 7개월째를 맞고 있다. 그동안 전쟁으로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와 수천억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 세계은행은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집행위원회가 공동으로 발간한 영향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우크라이나 재건 비용이 약 3천490억 달러(약 48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하지만 현재진행형인 전쟁의 재건 비용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국가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삶이 위협을 받고 있다. 유엔의 ‘세계 경제 위기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식량, 에너지, 금융 시스템 등에 악영향을 미쳐 전 세계 17억 명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2019년 이후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 사태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지만 세계 경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고물가 등으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사실, 인플레이션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불안정한 물가는 이번 전쟁이 방아쇠가 되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STORM’을 올 하반기 세계 경제를 관통하는 단어로 소개했다. STORM은 세계 경제의 침체(Stagnation), 미·중 교역 전쟁(Trade war), 오일 쇼코(Oil shock),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Russia), 미 연준의 급진적 통화정책(Monetary policy) 등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Key word이자 중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세계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지정학적 힘에 기인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양국 간 전쟁에 따른 경제 충격이 유럽은 물론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지정학의 힘’에 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지정학(geopolitics)은 지리적 요인과 국제 정치학의 연관 관계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지리적 요인들을 통해 국제 현안을 이해할 수 있다. ‘각 나라가 각자의 지리적 특성 안에서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가?’라는 메타 질문을 통해 현재는 물론 국가의 미래 방향을 이해하고 설정하는 데 있어 지정학적 경제 전략을 찾을 수 있다.

러시아가 지난 300년 이상 꾸준히 추진했던 남진 정책의 주요 목표 중의 하나는 흑해에서의 ‘부동항 확보’였다. 러시아의 패권 다툼은 부동항 확보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러시아의 부동항 확보는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의 해양 진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패권 경쟁의 상징적인 제스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유럽 열강이 동방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이자 흑해와 지중해 등 해양으로 나가기 위한 러시아의 유일한 출구였던 곳이다. 또한, 국제 물류 관계에서 러시아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상당 부분이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간다. 이러한 지정학적인 요인 때문에 러시아의 혁명가이자 정치가인 ‘레닌(Vladimir Il‘ich Lenin, 1870~1924) ’은 “우크라이나를 잃으면 러시아의 머리를 잃은 것과 같다”라고 하면서 전략적으로 우크라이나에 집착하였다.

‘알프레드 마한(Alfred Mahan, 1840~1914)’ 제독은 1900년에 이미 대륙 세력인 러시아가 군사력을 팽창시켜 해양으로 진출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1세기 전에 러시아의 부상과 패권 도전을 이미 간파한 것이다. 러시아는 가장 넓은 나라이지만 부동항이 없다는 지리적 아킬레스건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 도시를 장악하고 부동항과 흑해 주도권을 확보하여 해양 진출을 꾀하고자 하였다.

구소련의 붕괴는 지정학적 측면에서 볼 때 이념이나 경제 체제의 파탄이 아닌 지정학적 경쟁에서 패배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21세기는 국가 간‘지정학의 힘’을 두고 경쟁하는 뉴그레이트 게임의 시대이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대륙과 해양의 접점에 있어 ‘지정학적 힘’을 성장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한반도의 지리적 힘을 잘 활용하여 국제 교역의 성장 동력이 되도록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힘’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해양 진출에 필요한 지정학적 상상력과 해양 정책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이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배는 항구에 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내외 경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한국형 지정학’을 위한 항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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