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헌(선한병원 의학박사)

정성헌 선한병원 의학박사

박테리오 파지는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이들은 세균들의 벽을 뚫고 자신들의 유전자를 집어 넣는다. 그래서 자신들의 복제품을 만들어 내고 세균은 죽게 된다. 이러한 박테리오 파지들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세균들도 무기를 만들어 낸다. 박테리오 파지의 유전자 가닥을 잘라내는 것이다. 우리는 세균들의 이러한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가져다가 백신 개발을 비롯하여 여러 난치병의 치료에 이용하고 있다. 세균들이 구사하는 이러한 유전자 가위 기술은 매우 정밀하여 원하는 곳을 정확히 잘라내고 붙여서 편집하기도 한다.

많은 세균들이 독립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군집 생활을 한다. 군집 생활을 할 때면 이들은 역할분담이 일어난다. 가령 군집의 제일 외부를 이루는 세균들은 외부 침입에 대비하여야 한다. 그래서 군집의 나머지 세균들을 보호해야 하는데, 마치 우리몸의 면역 세포들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몸은 약 60~100조에 이르는 세포들이 모여 이룬 복합 생명체이다. 일부 세포들은 우리가 단세포 생명체였을 때처럼 행동한다. 대표적인 것이 면역 세포인데, 백혈구들을 보면 내몸에 있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생명체처럼 독자적으로 행동한다. 그러면서 백혈구들끼리 우리몸을 방어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고, 소통하며 긴밀히 협력한다. 암세포가 발생하거나 외부에서 세균이 침입하거나 이물질이 들어와도 이를 제거하기 위하여 이것을 감지하는 역할을 하는 백혈구, 방어체계를 일깨우는 백혈구, 와서 직접 공격하는 백혈구 등 각자의 역할이 있다. 우리는 이들의 도움으로 우리가 이런 복잡한 과정들을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우리몸은 알아서 건강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면역세포들은 호르몬이나 펩타이드와 같은 단백질 분자를 만들어 말을 하고 표면에 가지고 있는 수용체라는 귀를 통해 말을 알아 듣는다. 그런데 그 언어가 생각보다 정교하고 구체적이다. 그들이 서로 교환하는 정보의 양은 배우 방대하고 구체적이다. 세균들도 마찬가지이다. 군집생활을 하지만 때론 각자의 역할이 분산된다. 예를 들어 녹농균이 우리의 폐로 잡입했다고 치자. 그들은 바로 번식(분열)하지 않는다. 때를 기다린다. 우리몸의 면역계가 약해질 때까지 번식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자기들 끼리 소통한다. 숙주의 면역세포들이 강력할 때 잘못 번식하면 멸절당하기 때문이다. 숙주의 면역계가 약해 졌음을 알아차리면 일제히 소통하여 활발하게 자기들 세력을 넓히며 번식한다. 인간은 이를 이용해서 새로운 개념의 감염 억제 물질을 만들려하고 있다. 세균의 언어에 해당하는 단백질을 만들어 주입하는 것이다. 즉 세균들에게 거짓 소문을 퍼트리는 것이다. 실제 숙주의 면역계가 아주 약해져 있지만, 세균들에게는 숙주의 면역계가 강력하니 번식하지 말라는 거짓정보를 흘리는 것이다. 그런데 세균들도 방언이 있다. 같은 종류의 균주지만 의사소통을 할 때 다른 단백질을 사용한다. 숙주들의 면역체계를 무력화 시키기 위함이다.

세균과 동물들은 이렇게 끝없는 군비 경쟁을 하고 있다. 한세대가 지나려면 20년이 걸리는 우리와 빠르게 변이를 만들 수 있는 세균과의 군비 경쟁에서 우리가 이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세균은 단순한 하등 생물이 아니다. 그들도 하나의 완벽한 생명체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형태로 대화하고 서로 협력한다. 군집 생활을 하면서도 역할분담을 하고 그들 나름의 사회를 이룬다.

다행스러운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세균들의 극히 일부만 우리에게 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우리와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으며 때로는 대장균이나 우리 장속의 마이크로바이옴처럼 우리의 생존에 도움을 준다. 우리 세포안의 미토콘드리아는 원시시대 우리몸에 들어와 정착한 세균이다. 그래서 독자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미토콘드리아가 없으면 우리의 세포들은 살지 못한다. 또한 우리가 가진 유전자의 40% 가까이가 바이러스로부터 온 것이다.

사람이 사는 사회도 서로를 인정하고 협력하여 함께 사는 것이 중요 하듯이 자연계도 마찬가지이다. 지구는 우리가 주인이 아니다. 마치 지구가 우리만의 것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고 있지만 인류가 지구에 퍼지기 시작한 시간은 불과 몇십만년 뿐이 안된다. 공룡은 1억4천만년동안 지구상에 번성했었다. 세균들은 거의 30억년 이상을 지구상에서 존재해 왔고, 지금도 가장 번성한 생명체다. 누가 지구의 주인인가?

대장균과 마이크로바이옴은 협력의 좋은 모델이다. 많은 알레르기 질환들은 지나친 청결 때문에 생긴다. 아이들에게 지나친 청결은 아이들이 우리 주변의 수많은 세균들과 MOU 맺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세균들과 대립하지 말자. 그들과 협력해야 한다. 현대 의학은 곧 그들의 언어를 익힐 것이다. 그러면 지금의 항생제처럼 그들과 군비경쟁을 하는 극한적인 대립구도를 피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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