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민(법무법인 맥 변호사)

송진민 법무법인 맥 변호사

소송에서 당사자들은 사실관계와 법률적 쟁점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펼친다. 당사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각자 나름의 무기를 사용하는데, 사람들은 그 무기를 ‘증거’라고 부른다.

증거라는 무기는 매우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고, 무기의 위력(이른바 ‘증명력’) 역시 천차만별이다. 다양한 무기 중에서도 특히 강력한 것은 바로 ‘처분문서’다. 당사자가 작성한 계약서, 차용증 등 법률적 의미를 담고 있는 문서를 ‘처분문서’라고 하는데, 유효한 처분문서는 매우 강력한 증명력을 가지고 있어 이를 번복시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이처럼 매우 강력한 증명력을 가진 처분문서를 번복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문서 작성의 경위를 다투는 것이다. 예컨대 작성자들의 필요에 의해 거짓으로 처분문서를 작성했다거나, 처분문서 작성 이후에 서로 합의하여 문서를 무효화 했다는 사정 등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처럼 문서 작성의 경위를 다투기 위해 가장 많이 활용하는 대표적인 증거방법은 ‘녹취록’이다. 녹취록은 제출이 쉽고 증거를 확보하는 방법 역시 비교적 간단해 소송 실무에서 매우 폭넓게 활용되어왔다. 그런데 최근 녹취록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소식이 국회에서 들려오고 있다. 상대방의 동의 없는 녹음 자체를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됐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소속 윤상현 의원은 지난 8월 18일 이른바 ‘통화녹음 방지법’으로 불리는 ‘통신비밀보호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주된 골자는 공개되지 않은 상대방과의 대화를 동의 없이 녹음하는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동의 없이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녹음하는 경우(예컨대 도청, 감청)에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하고 있는데, 대화에 참여한 사람이 상대방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한 때도 도청한 것처럼 취급하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법안이 발의된 사실이 알려진 뒤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높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논란이 일자, 윤 의원은 기존 발의안을 철회하고 녹음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신설하고 처벌 수위를 낮추는 등 그 내용을 수정하여 다시 발의했다.

물론 위 법안은 수정 발의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입법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결론적으로는 실제 입법 활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발의가 아니라 다분히 정치적 목적을 가진 ‘보여주기식 발의’라는 의미다.

실제로 윤 의원은 위 법안을 발의하면서 “최근 논란이 되는 MBC 등 일부 언론의 윤석열 대통령 사적 대화 녹취 및 날조 보도 등으로 헌법상 보호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그에 따르는 행복추구권의 일부인 음성권에 대한 침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므로 통화녹음의 윤리적 판단에 무감각한 대중에게 경각심을 준다”라는 의미로 위 법안을 발의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윤 의원의 발언은 정치적으로는 일리가 있는 발언일지 모르나, 소송 실무와는 동떨어진 이야기에 불과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실무에서 녹취록이 사실관계를 입증하는 증거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음은 물론이고, 녹취록의 증명력이나 공개에 따른 책임 역시 법원에 의해 충분히 통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법원은 녹취록에 담긴 내용이 소송의 쟁점을 명확히 밝히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대화나 녹음의 경위 등을 살펴 녹취록의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예도 있고, 대화의 내용 등을 고려하여 녹취록의 제출 및 유포 행위가 대화자의 음성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녹취록에 대한 ‘법률적 통제’는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대법원 역시 형사 처벌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관점에서 일관되게 대화 참여자가 대화를 녹음하는 경우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물론 상대방의 동의 없는 대화 녹음의 무분별한 배포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취지는 아니다. 다만 이에 대한 논의가 정치적 관점보다 국민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관점에서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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