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남도일보 편집국장

단풍철이다. 주말과 주중을 가릴 것 없이 오색으로 물든 산과 들에는 어디를 가든지 인파로 북적인다. 코로나19로 3년여 간 진행되던 비대면 방역정책이 유연해지면서 국내 여행이 자유로워진 결과다.

오늘은 누구나 한, 두 가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음직한 수학여행의 기억들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소풍과 수학여행은 교실을 떠나 자연과 교감하거나 다양한 문화·산업시설을 견학하는 과외 활동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일제강점기이후 ‘원족(遠足)’이라 부르던 소풍이 매년 봄과 가을에 근거리를 하루 정도를 다녀오는 것이라면 수학여행은 학교 급별로 한 번 가되 보통 이틀 이상 숙박을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현재와 같은 유형의 국내 수학여행은 일제강점기인 1886년부터 시작돼 본격화된 것은 1907년으로 알려지고 있다. 근대적 학제가 형성된 이후 보통학교 학생들은 근교의 명승지를, 중등학교 이상은 보다 먼 지역 도시의 근대적 문명시설물과 명승지를 견학했다. 수학여행은 사방으로 철도가 연결돼 원거리 여행이 가능해지고 여관 등 숙박시설이 발달하면서 더욱 활성화됐다. 대게 유적지나 자연유산을 끼고 있는 곳이 대상이었다. 서울에서는 평양과 금강산·개성·경주·공주·부여로, 지방에서는 경성 등이 주요 코스였다.

수학여행이 학습 과정으로 정착돼 가자 국내가 아닌 만주와 일본 등 해외여행이 주목을 끌었다. 일본행은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이동해 다시 증기선으로 갈아 타야 했는데 단체 할인이 가능한 3등실이 주로 이용됐다. 일본으로 수학여행은 일본 근대화와 일본 역사를 상징하는 도시로, 만주행은 만주를 점령한 일본 제국의 위대한 승리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방문지였다. 여기에는 일제의 숨은 의도가 있었다.

이 같은 수학여행에 대해 정작 학부모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과년한 딸을 집 밖에서 재워야 한다는 불안감에다가 감당하기 힘든 경비가 문제였다. 1935년 고무공장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 30전 안팎이었는데 5박6일의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가려면 16원, 일본이나 만주행은 최소 40원을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수학여행은 꾸준히 이어졌고 광복이후에는 초·중·고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공교육 과정으로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다. 수학여행을 가고 싶지 않거나 장애나 차 멀미 등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학교에 나와서 동급생들이 여행에서 돌아올 때까지 교사도 없는 빈 교실에서 자습을 해야 했다. 수학여행의 참여를 높이기 위한 조치로 읽혀지기는 하나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가혹한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다.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남아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심한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960년 후반의 사정은 유현묵(1925~2009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희극인 구봉서, 영화배우 황해·문희가 주연했던 1969년 작 ‘수학여행’이라는 영화에서 잘 드러난다. 낙도 학교로 부임한 교사가 학생들이 섬 밖으로 가본 적이 없는 사실을 안타까워 해 도시로의 수학여행을 계획하지만 생활비에 쪼들리고 애들 일손까지 빌려 사는 학부모들의 반대에 부딪친다. 이에 교사와 학생들은 갯지렁이를 파서 여비를 마련해 서울 창경궁과 방송국, 남산 등을 둘러보고 섬으로 돌아온다는 줄거리였다.

1970년대부터는 고속도로가 뚫리고 기차보다는 전세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여행지가 보다 더 다양화해졌다. 봄이나 가을이면 학생들을 태운 전세버스가 긴 행렬을 지어 달리는 모습은 보기 드문 풍경이 아니었다. 1980년 이후에는 생활이 좀 더 넉넉해지면서 육지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가 하면 대만이나 일본,더 나아가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는 사례까지 생겨났다.

이런 수학여행에는 각종 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육지나 해상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고 늘 안전 불감증이 원인으로 지적되면서도 개선은 더뎠다. 이 가운데 최악은 2014년 4월16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학생 248명과 교사, 일반인 등 299명의 사망을 부른 세월호 침몰 참사였다.

이후 단체 여행에 대한 부담으로 수학여행은 자율적인 형태로 운영이 변경됐다. 수학여행이란 단어도 일제 잔재의 명칭이라 해서 ‘교육여행’,‘여행학교’라는 말로 바꿔 사용하는 곳도 있었다. 2019년 2월부터 전 세계로 휘몰아친 코로나19 영향으로 모든 수학여행은 전면 중단됐다.

지난 5월에 이어 최근 거리두기 완화 조치로 야외활동이 다시 살아나면서 이번 2학기 수학여행을 계획한 학교는 전국적으로 4천800여 곳에 이른다. 그러나 여전히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요즘 다소 눈길을 끄는 것은 학생들이 아닌 퇴직 후 머리가 희끗 희끗한 동창생들이 추억을 소환해 ‘다시 떠나는 수학여행’이 유행하고 있다. 보기에도 좋다. 살아갈 날보다 지내온 날이 훨씬 많은 어릴 적 동무들과 함께 원색의 옷을 입고 추억여행을 떠나는 일,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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