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사뿐사뿐 발자국 딛는 소리며 치마 쓸리는 소리가 정적을 소리 없이 흔드는 그 미세한 소리까지 귀 기울여 들으면서 안공자는 바싹 마른 입술 사이로 뜨건 입김을 짧게 토해내며 긴 심호흡을 했다.

그 순간 방문 고리 잡는 소리가 덜컥하고 나더니 서서히 문이 열렸다. 열린 문틈 사이로 찬바람이 휭 방안으로 쏠려 들어왔다. 안공자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칠흑 어둠을 응시했다. 푸른빛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은 고개를 푹 숙인 여인은 얼굴에 눈만 겨우 내놓고 하얀 목면(木棉)을 두르고 있었다. 안공자가 마른 침을 꼴깍 다시며 보니 이공자의 김씨 부인이 분명했다. 안공자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얼른 여인의 손을 붙잡았다.

“내 그대를 본 순간 자나 깨나 꿈에도 잊지 못하고 그리워했나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仙女) 같은 여인을 사모하다가 깊은 병이 들어 생사를 오락가락하였는데 이렇게 제 뜻을 받아주시오니 너무도 감사하옵니다!”

안공자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은 여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붙잡은 손도 얼음장처럼 싸늘하기만 했다.

“오늘 밤 당신과 운우지락(雲雨之樂)을 나누게 된다면 내 죽어도 여한(餘恨)이 없겠습니다!”

안공자의 말을 들었는지 아니 들었는지 얼굴에 목면을 두른 여인은 도무지 말이 없었다. 안공자는 방 가운데 서 있는 여인을 그대로 두고 비단이불을 서둘러 깔고는 여인을 번쩍 안아 부드러운 요 위에 눕혔다. 여인은 아무런 말도 없이 요 위에 반듯이 누워있었는데, 여전히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목석(木石)같이 냉랭(冷冷)한 여인의 모습을 대하는 안공자는 가슴속에서 활활 타오르던 애욕의 갈증(渴症)이 자신도 몰래 사그라들고 마는 것이었었다.

그렇다고 예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이 여인으로 인해 목숨줄이 오락가락 죽을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데 막상 기회가 오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안공자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목석같이 싸늘한 여인의 저고리 고름을 헤집어 풀고 치맛자락을 풀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속치마까지 벗기고는, 제 옷을 재빠르게 홀랑 벗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가더니 그녀를 와락 끌어안고 번쩍 말처럼 위로 올라탔다. 그렇게 하는데도 여인은 마치 숨결 끊어진 싸늘한 송장처럼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 차갑고 냉랭하기만 한 전혀 반응(反應)하지 않는 흡사 밋밋한 돌 조각상 같은 여인의 몸을 끌어안은 안공자는 제풀에 꺾여 들끓는 성욕(性慾)이 그만 지리멸렬(支離滅裂) 사그라들고 마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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