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 말을 들은 안공자는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달아올라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붉게 달아오른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그러나 얼마나 다행인가! 이공자 부인의 지혜로운 대처로 인생 일대에 씻을 수 없는 실수를 모면함과 더불어 죽어가던 몸을 회복한 것은 물론 자신의 아내가 누구보다도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니 얼마나 큰 행복인가! 사람이 살다가 보면 본의 아니게 여러 잘못을 저질러 버릴 수가 있겠으나 잘못되려는 순간에 자신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안공자는 그 일이 있은 연후로 대오각성(大悟覺醒)을 하게 되었다. 이공자 아내 김씨 부인이 참으로 지혜가 출중한 훌륭한 여인이라고 여기며 존중하게 되었고 또 자신의 아내를 깊이 사랑하며 살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제주도로 귀양살이간 최부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 최부자는 어엿한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제주도 귀양지까지 따라온 풍산마을의 김씨 처녀와 꼽추 아들과 인연을 맺어주어 혼사를 치러주었던 것이었다. 은혜를 갚겠다고 막무가내로 따라온 김씨 처녀는 귀양지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다해가며 최부자 가족들을 봉양했다. 앞날이 캄캄한 최부자는 김씨 처녀를 돌려보내려 하였으나 일 년이 넘도록 헌신적으로 궂은 일을 하면서 보살펴 주고 또 최부자의 곱추 아들과 사이가 좋아지자 결국 김씨 처녀를 받아주었던 것이었다.

죄인이 되어 귀양살이간 최부자는 그로 대가 끊어져 버릴 운세였으나 허공달의 배려로 김씨 처녀가 따라와 마침내 꼽추 아들의 배필로 맞아들여 두 명의 손자까지 얻었으니 이 얼마나 큰 경사(慶事)인가?

그로부터 오 년이 더 흘러 최부자는 유배지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그러나 집도 절도 없는 충청도 고향 땅으로 돌아가 살 수가 없었다. 백발이 성성한 최부자는 제주도에서 가족들과 함께 배를 타고 뭍으로 나와 전라도 어느 해안가에 도착하여 그곳 산중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산중에 터를 잡은 최부자는 오두막집을 손수 짓고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갔다. 만석지기 최부자가 논밭을 빌려주고 도지를 받아 떵떵거리며 살았는데 이제 손수 삽이며 쇠스랑이며 괭이를 손에 쥐고 일하며 살아가야만 했다. 평생 자신이 먹을 채소며 쌀 한 톨 제 손으로 경작(耕作)하지 않았던 최부자는 자신의 지난날을 다 잊고 이제 자신과 부인 그리고 아들 내외와 손자들이 먹어야 할 채소며 쌀을 심고 가꾸어야 했다. 누가 보면 최부자는 이제 영락없는 산골 농부(農夫) 할아버지였다.

그런 최부자가 어느 날 해안가 고을에 오 일마다 서는 장날 손자들 옷감을 사러 나가게 되었다. 기웃기웃 장길을 지나가는데 마침 사람들이 여럿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계속>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