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에서 ‘전남의 희망을 캐다’]-농어촌 경쟁력 확보로 위기 극복
(10) ‘보성 수정벌’ 농장 김정관 대표
밤낮으로 관찰·실험 도전 ‘수정벌 박사’
고령화된 농촌 농가에 일손 부담 줄여
전국으로 발품 팔아 년 3억여 원 매출

전남에 수정벌을 처음으로 도입한 김정관 대표. /허광욱 기자

최근 전국적인 저출산 현상으로 인구 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어 전남지역 지자체들의 인구정책에도 다양한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특히 전남의 대부분의 군 단위 지자체들이 ‘인구소멸 위험지역’에 해당, 인구 늘리기에 비상이 걸렸다.

이에 따라 최근 각 지자체들은 인구 위기 극복과 농어촌을 살리기 위한 다양하고 새로운 정책 모색이 요구되고 있는 가운데 귀농(귀어)·귀촌 활성화 정책과 정주 여건 개선 등이 하나의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이에 본보는 전남 지자체들의 귀농귀촌 정책을 비롯해 성공적으로 정착한 귀농 사례 등을 취재 보도해 갈수록 심각한 인구 감소 현상 극복과 귀농귀촌을 계획하고 있는 미래의 전남 도민을 위한 농촌 교육의 지침으로 삼고자 한다.

이번호(10회)에는 벌로써 농작물의 수정을 대신하는 ‘수정벌’을 전남에 최초로 도입한 ‘보성 수정벌’ 농장의 임은상 대표(59)를 찾아 귀농 과정에서의 애환과 성공 스토리, 귀농 예비자를 위한 조언 등을 들어본다. <편집자註>

◇공고 졸업후 3수후 대학 입학…무역회사 법인장까지

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한 김 대표는 대학과정은 인문계인 일본어과(한양대)를 전공했다.

당시 실업계고를 다녔기에 진학을 위한 공부가 많이 부족해 대학도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3수를 거친 후에 입학을 했다.

또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서울에 있는 한 무역회사의 평범한 직원으로 일하다 한 때는 해외 법인장을 맡을 정도로 활발한 직장생활을 이어가기도 했다.

2005년에는 갑작스럽게 외국인 태국으로의 이민 길에도 오르게 된다. 태국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던 거래처의 사장이 10여 년간 그를 지켜보다가 신임을 해 제안을 했던 것이다.

그는 “거래처의 사장이 태국에서 운영한 사업체를 현지 한국인에게 맡겼더니 엉망이 되어 일을 같이 하자고 불러 이에 응해 일을 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직장생활서 얻은 난청·향수병 등 낙향 결심

김정관 대표가 개발한 수정벌 통에서 자라는 있는 벌들. /허광욱 기자

5년여 동안 태국에서 열심히 일을 한 이후에는 다시 서울로 돌아와 다른 무역회사를 잠시 다니게 됐다.

김 대표는 이 때부터 본격적인 귀농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귀농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평소 직장생활에서 고집스럽게 일에 몰두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한쪽 귀에 돌발성 난청이 생긴 것이다.

여기에다 직장 일에 대한 행복감 감소, 고향에 대한 향수 등이 함께 작용했기 때문이다.

40대 중반이 된 2009년에 고향인 전남 보성군 벌교읍 장암리로 귀농, 이제 어느 덧 13년차의 다소 안정적인 귀농인이 됐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는 도중 한쪽귀가 윙윙거리는 이명이 자주 와 치료를 해도 호전되지 않았다”며 “그러다 고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오니 지금은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웃음을 지었다.

이어 “아내에게 고향으로 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반대는 하지 않았다”며 “특히 태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이미 집과 회사, 자녀 학교 문제 등을 정리후 짐가방 하나만 가지고 간 덕분에 1차적으로 주변 정리가 어느 정도 되어 있어 고향으로 내려오는 것을 쉽게 결정할 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곤충 새 품종 도전하다 서양 뒤영벌 ‘수정벌’ 인연

김 대표는 고향에 귀농을 하기로 결심은 굳혔으나 ‘가서 당장 무엇을 해서 먹고 사느냐’가 그에게는 큰 고민거리였다.

그래서 그가 생각한 것은 바로 애완 곤충 사육이었다.

2009년에 고향으로 내려올 당시만 해도 한창 ‘곤충 사육’ 붐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는 영암군 등으로 발품을 팔아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 등을 키우는 곳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다양한 사업 구상을 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 조사 결과 애완 곤충을 사육하는 곳들이 급속도로 늘어나 마리당 단가가 낮아 현실적으로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고민 끝에 다른 품종의 곤충을 다양하게 알아보던 차에 서양 뒤영벌로 불리는 ‘수정벌’에 온통 자신의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수정벌과의 새로운 인연과 함께 제2막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것이다.

◇무모한 도전후 매년 수억 매출 귀농인으로

김전관 대표의 ‘보성 수정벌’ 사육시설. /허광욱 기자
김전관 대표의 ‘보성 수정벌’ 사육시설. /허광욱 기자

당시는 수정벌은 양봉과 달리 호박벌이라 불리는 외래 종자인지라 키우는 사람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수정벌’이라는 개념 자체도 없어 소득은 뒷전인데다 무모한 도전에 뛰어든 셈이었다.

수정벌을 농촌진흥청 농업과학원에서 실험 사육을 하고는 있었으나 타인에게로의 기술 이전도 쉽지가 않았다.

여기서 키우는 수정벌 역시 네덜란드와 벨기에 등에서 수입해 실험 사육을 한 것이 전부일 정도였다.

김 대표는 수정벌을 사육하기 위해 전국의 곤충 사육현장 곳곳을 찾아다니는 등 온전히 자신만의 노력으로 터득해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처럼 수정벌을 키우는 방법을 익히는 것도 쉽지가 않았지만, 어렵게 키운 수정벌을 판매하는 것 역시 자신이 개척해야만 했다.

수정벌 판매처를 만들기 위해 보성이나 전남 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하우스 농가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하나하나 설명하고 설득해야만 했다.

그 결과 현재 김 대표의 ‘보성 수정벌’은 어느 정도 알려져 전국적으로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그가 생산한 수정벌통은 1년에 5천통 가량으로 2억 5천만원에서 3억 여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는 “시작 당시에는 1년에 자가용으로 7만㎞이상을 이동해 시설하우스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수정벌 판매처를 만들어야 하는 과정을 겪었다”며 당시의 애로점을 전했다.

◇3년여 동안 투자만…초기 연구·실험에 아파트 한 채 날려

김 대표는 수정벌 사육 초기에는 수없이 많은 난관을 겪었다.

적당한 온도와 습도, 빛 조절, 먹이와 습관 등 모든 게 생소한 수정벌만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밤에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관찰하고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다.

실내에 수정벌 저장고를 비롯해 사육장 등을 직접 손으로 만들면서 수차례 부수고 짓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이러한 연구와 실험으로 살림은 거덜 나 거의 무일푼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는 “혼자서 3년 여 동안 수정벌에 맞는 사육조건을 위해 시설을 만들고 연구를 하다 보니 거의 아파트 한 채를 날렸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확신을 가지고 매진했다.

그가 수정벌 사육지로 택한 고향 보성군 벌교읍 장암리 인근 조성면은 방울토마토 시배지라는 상징성에다 벌교의 딸기 같은 무밀 작물 비닐하우스가 많은 지리적 장점이 수정벌 사업 성공에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13년의 노하우로 그만의 특화된 수정벌을 시장에 내놓고 안정적 수익을 올리고 있는 그는 ‘수정벌 박사’로 통하고 있다.

◇먼저 경험한 후 시작해야…판매처 중요

김 대표는 곤충을 사육하려는 예비 귀농인들에게 조언도 서슴지 않는다.

현재까지 그에게 많은 예비 귀농인이 찾아와 자문을 구했다.

그러나 실제 김 대표처럼 수정벌을 사육하는 귀농인은 아직 없다고 한다.

그는 “호남지역에서 수정벌을 사육하는 사람은 현재로선 유일하다”며 “그것은 그 만큼 이 농사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조언했다.

전남 곤충자원연구회 부회장직을 맡으면서 예비 귀농인에게 길잡이 역할도 하고 있는 그는 “무작정 매스컴에 나오는 곤충사업만 믿지 말고 먼저 경험을 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며 “아울러 판매를 어디에다 할 것인지도 염두에 두고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귀농 초기에는 모든 게 서툴러 수정벌을 많이 죽이기도 했다”는 그는 “사육한 수정벌 1통이면 200평 정도의 하우스 한 동을 충분히 수정할 수 있어 고령화된 농촌 일손을 돕고 비용 절감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부취재본부/허광욱 기자 hk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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