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자(동화작가)

이성자 동화작가

매년 이맘때가 되면 서울에 사는 S로부터 김치 선물을 받는다. 당연히 지방에 사는 내가 보내야 할 터인데 거꾸로 매년 받게 되는 선물이다. 살면서 어버이날이나 생일 때, 아이들 또는 이웃에게서 이런저런 선물을 받아보지만 김치 선물 받을 때는 감동이 몇 배로 불어난다. 정과 나눔이라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고 그 밑바닥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김장철만 되면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무작정 김치를 담근다고 한다. 평생 어머니가 담가주는 김치를 먹어보지 못한 그녀이기에 김치에 대한 남다른 애틋함이 묻어있다. 온갖 양념을 넣어서 김치를 담그노라면 어딘가에 살고 있을 어머니와 함께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어 기분이 좋단다. 많고 많은 음식 중에 왜 김치냐고 물었더니, 진한 그리움 때문이라고 했다. 친구들이 김치 통 들고 어머니가 담가놓은 김치 가지러 간다고 말할 때마다 눈물 나도록 부럽다는 것이다.

그녀는 나이가 들면서 거꾸로 자신처럼 어머니가 그리운 사람들에게 직접 김치를 담가서 나눠주는 일을 오랫동안 실천해왔다. 안타깝게도 이년 전 그녀가 척추 고정수술을 받았다. 이제 김치 담그는 일을 그만 두려나 했더니, 변함없이 김치가 배달되어 왔다. 조금만 무리해도 허리가 틀어지고 수술한 자리가 아플 테니 그만두라고 말렸더니, 요즈음은 몸을 많이 챙기면서 병원치료를 받고 지내니 걱정 없단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아프다고 자식 돌보는 일을 쉬는 거 봤느냐고, 되레 큰소리쳐서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나의 경우는 직장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김치를 반찬가게에서 사다 먹는다. 그러니 자식들에게 김치를 담가 주는 일은 처음부터 생각도 못 했다. 문득 올해는 힘들더라도 김치를 한 번 담가서 자식들에게 혹은 외로운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 아동문학가로 혹은 컴퓨터 앞에 앉아 글 쓰는 엄마로만 기억되지 않고, 오순도순 김치 담그는 추억도 함께 선물해주고 싶어서다. 욕심처럼 생각되겠지만 꼭 실천해보고 싶다.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만큼이나 김치의 종류도 갖가지다. 담가서 즉시 먹는 생김치는 아삭아삭 상큼해서 좋고, 익은김치는 부들부들 새콤해서 맛있다. 묵은김치는 감칠맛이 나 고등어와 조림을 해서 먹으면 누구라도 좋아하는 최고의 요리가 된다. 그리고 다양한 재료들과 톡! 쏘는 시원한 국물 맛의 나박물김치는 없던 입맛도 되살려 준다. 이처럼 김치의 맛과 종류는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김치, 갖가지 맛있는 반찬이 차려져 있어도 김치가 빠지면 안 되는 우리의 밥상이다.

나라에서는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제정하여 김치산업의 진흥과 영양적 가치와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치는 배추, 마늘, 고추, 양파 등 최소 11가지 재료를 사용한다. 면역력 증진, 항산화 및 항암효과 등 22가지 효능을 낸다. 재료와 효능을 생각하며 김치의 날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더 나아가 김치는 미국의 건강전문지 ‘헬스’가 선정한 세계 5대 건강식품에 꼽히는 발효식품이라고 하니 정말 매력만점의 우리 김치다.

예전에는 그 집 반찬 맛을 김치 맛으로 평가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김치를 반찬가게에서 사다 먹기 때문에 가게의 선택에 따라 맛이 달라져서, 우리 집만의 반찬 맛이 없어져 버린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 없는 날을 잡아 자식들과 함께 김치를 담가보면 어떨까? 매운 고춧가루 때문에 에취에취 기침하면서 김치 담기를 함께 했던 추억이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될 것이며, 보이지 않는 끈끈한 사랑의 버팀목이 되리라 여겨진다.

직접 담근 김치를 냉장고 안에 가득 넣어두고 자식들과 이웃에 나눠 주는 상상만 해도 부자가 된 기분이다. 몇 년 전,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던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내 어머니 대신 김치를 보내주는 속 깊은 그녀다. 오늘따라 S가 보내준 김치가 유난히 아삭아삭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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