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민(법무법인 맥 변호사)

송진민 법무법인 맥 변호사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미디어의 선두주자는 ‘TV 프로그램’이었다. 주말이 되면 가족들 모두가 TV 앞에 모여앉아 리모컨 쟁탈전을 벌이기도 하고, 유명 예능프로그램이나 요즘 가장 핫한 드라마를 ‘본방사수’하는 것이 일상이던 시절이었다. 인기가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은 시청률 30%를 넘기도 하고 드라마는 40%를 넘기기도 했으니, ‘대 TV의 시대’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TV가 가정 내 미디어 시장을 제패하고 있던 와중에, 집 밖의 미디어 시장은 영화관이 차지했다.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2003년 ‘실미도’를 시작으로 다수의 작품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고, 별다른 홍보 없이 입소문만으로 수백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도 많아졌다.

굳건하던 TV와 영화관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OTT, 유튜브 등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미디어가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 강자로 자리매김하면서부터다. 특히 OTT가 기존 TV 프로그램이나 영화관에서 상영된 영화의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징어게임’이나 ‘수리남’ 같은 새로운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면서, 미디어 플랫폼의 주도권이 TV와 영화관에서 OTT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OTT가 미디어 플랫폼의 패권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현재 분위기로는 OTT도 유튜브를 당해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유튜브 콘텐츠인 ‘패스트 무비’가 미디어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패스트 무비’란 영화 한 편을 10분 정도로 편집해 자막과 해설 등을 붙여 짧은 시간에 전체 줄거리를 알 수 있게 한 영상으로, 영화를 비롯해 드라마까지 섭렵하며 그 위용을 떨치고 있다.

패스트 무비의 인기는 OTT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하는데, 다양한 OTT 플랫폼에서 만든 자체 제작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짧은 시간으로 모든 콘텐츠를 즐기고자 하는 수요를 모두 흡수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튜브에서 영화의 제목을 검색하면 다양한 패스트 무비 영상이 검색되고, 그중에는 조회 수가 수백만 회를 넘어가는 영상도 많다.

이용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패스트 무비 역시 다양한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대부분의 이용자 역시 별다른 거리낌 없이 패스트 무비 콘텐츠를 이용하고 있으며, 일부 이용자들은 패스트 무비를 ‘효율적이고 현명한 콘텐츠 소비 방법’이라고 추천하기도 한다.

그런데 패스트 무비를 즐기다 보면 불현듯 “제작사가 엄청난 비용과 노력으로 만든 콘텐츠를, 이렇게 무료로 즐겨도 괜찮을까?” 라거나 “나도 패스트 무비 영상을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려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아가서는 “패스트 무비 영상을 만드는 것이 제작사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이처럼 패스트 무비의 저작권 침해 논란은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특히 패스트 무비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일본에서는 영화사와 배급사들이 패스트 무비 업로더들을 고소하거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일본 법원은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패스트 무비가 영화사와 배급사들의 저작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일본 센다이지방재판소는 일본의 패스트 무비 업로더들의 저작권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선고하였고, 최근에는 일본 도쿄지방재판소가 업로더들에게 영화사가 입은 손해액 5억 엔(한화 약 46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한국 법조계는 위와 같은 일본 법원의 판단이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 내에서도 패스트 무비가 ‘2차적 저작물 작성권’과 ‘동일성유지권’ 측면에서 원제작자들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한다는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져 왔기 때문에 조만간 다수의 소송이 제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논란과 별개로 패스트 무비는 이미 하나의 콘텐츠 소비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국내 영화사들은 패스트 무비가 대세임을 인정하고, 패스트 무비 형식의 영화 홍보 영상을 제작하는 등 공생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불법’이 된 패스트 무비. 패스트 무비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대한민국 법원의 판단을 유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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