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유입으로 역사 깊어지고 미래 밝아진 ‘광주’
시민들 환대로 700여명 정착중
범시민 항공료 모금 운동 전개
광산구·교육청·시민단체 등
지역사회 실질적 역할 가능 지원
광주 고려인들 다양한 자생 노력
고려인 역사·문화·예술 허브
‘세계 고려인 중심지 광주’추진
고려인 매개로 발전 가능성 제시

 

지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난민이 된 고려인이 지역사회로 대거 유입되면서 고려인을 매개로 한 ‘글로벌 광주’ 가능성을 확인하고 그 방향성을 모색할 수 있었다.사진은 지난 9월 추석을 앞두고 광주고려인마을 홍범도공원에서 열린 고려인 추석 한마당 잔치 모습. 고려인 자녀들이 한복을 입고 공연을 하고 있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올 한해 광주는 고려인의 존재와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난민이 된 고려인이 지역사회로 대거 유입되면서 고려인을 매개로 한 ‘글로벌 광주’ 가능성을 확인하고 그 방향성을 모색할 수 있었다.

◇전쟁난민 대거 광주행

지난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해를 넘겨서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전쟁은 대한민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는 상승하고 증시는 하락했다. 전쟁이 일어난 장소는 먼 곳이었지만, 그 영향력은 곧장 피부로 와닿았다.

광주는 전쟁난민이라는 또다른 상황을 맞는다. 전쟁난민이 된 우크라이나 고려인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고려인은 19세기 중엽부터 광복 때까지 러시아와 구소련 지역으로 이주한 한민족 동포와 그 친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난 3월 13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우이 외곽지역에서 살던 최마르크(13세)군이 대한민국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17일만이었다.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의 ‘광주행 러시’서막이었다. 10일 뒤인 3월 22일 남아니타(10세)양이 두번째로 광주에 왔다. 3월 30일과 4월 1일에는 각각 21명, 10명의 오면서 ‘집단 입국’이 본격화 된다. 이후 매월 100명 가량 입국한다.

전쟁을 피해 대한민국에 입국한 고려인 대부분이 광주로 향했다. 전쟁이후 입국한 우크라이나 고려인은 2천명(11월 30일 기준) 정도로 국내 고려인사회는 추정한다. 이 가운데 1천830여명이 광주지역사회의 항공료 지원을 받았다. 이 830명 중 600~700명이 광주에 정착중이다.

나머지는 경기도 안산시 뗏골마을과 인천광역시 연수구 함박마을 등 국내에 형성된 고려인사회에 안착했다.

우크라이나 전쟁난민은 해가 바뀌어도 계속 국내로 입국할 전망이다. 고려인마을은 대한민국 입국을 희망하는 전쟁난민이 올해 연말까지 200여명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광주시민 성금으로 구입한 항공권을 이용해 광주에 도착한 우크라이나 거주 고려인동포가 고려인마을이 마련한 쉼터에서 손을 흔들며 광주시민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김명식 기자

◇광주시민 따뜻한 인간애

고려인들의 광주행 러시는 ‘귀환 고려인 동포를 위한 항공료 지원 모금’으로 대표되는 광주공동체의 인간애가 배경이었다.

항공료 지원 모금 운동은 고려인마을에서 시작됐다. 최마르크군 입국 당시 광산구 월곡동에 자리잡은 첸 올가씨가 항공료에 보태라며 후원금을 낸 게 도화선이 됐다. 항공료를 마련하지 못해 현지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최마르크군은 고려인마을서 보내준 항공료로 광주에 안착할 수 있었다.

이같은 사연이 광주시민사회에 알려지면서 각계각층에서 후원금이 답지했다. 나라가 힘이 없어 강제이주 당한 삶을 살았던 후손들이 또다시 같은 상황에 처하자 광주공동체 특유의 ‘의로운 정신’이 발휘됐다.

시민들은 후원금를 비롯 다양한 후원품도 고려인마을에 보냈다. 쌀, 이불, 식기, 각종 식료품 등 난민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물품들이었다. 후라이팬과 감자튀김까지 직접 들고 고려인마을에 온 시민들도 있었다. ‘조상의 땅’을 찾은 동포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너도 나도 동참했다.

우크라이나 난민 도착을 계기로 지역사회에 다문화 정책 중요성이 부각됐다. 남도일보를 비롯한 언론, 고려인 집거지가 형성된 광산구, 광주시교육청, 호남대학교 등은 주거와 일자리, 의료, 법적 지위, 원주민과의 관계, 자녀 교육, 언어소통, 한민족 정체성, 문화적 차이 극복 등 고려인 정착 과정에 필요한 현안과 과제, 지역사회 방향성을 고민했다.

특히 고려인의 안정적인 정착과 이를 통한 실질적인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는 방안을 찾고자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215만명(2020지방자치단체외국인통계현황·총인구 4.1%)의 국내 거주 고려인의 정착 문제는 우리나라 외국인 정책의 최대현안이기도 했다.

광주 고려인마을극단 ‘1937’과 호남대학교가 공동제작한 뮤지컬 ‘나는 고려인이다’가 2일 카자흐스탄 알마티 한국교육원에서 해외 첫 공연을 가졌다. 고려인의 시련과 극복의 역사를 음악과 무용, 노래로 표현한 작품은 현지 고려인 동포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각계각층 정착 지원 노력

남도일보는 고려인 집단 입국의 의미와 배경, 지역사회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광주고려인마을 우크라이나 난민보고서’를 연속 보도해 고려인을 비롯한 다문화가족과 공존하는 ‘광주공동체’ 방향성을 제시했다.

광산구는 직개편에 나섰다. 고려인을 포함한 다문화사회 정책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하고자 기존 다문화팀(직원4명)을 외국인주민과(3개팀·직원 10명)으로 확대 개편해 내년부터 운영한다.

광산구는 광주지역 거주 전체 외국인 54%(2만2천132명)와 7천명에 이르는 고려인 집거지(2022년 9월 30일 기준)가 형성돼 있다.

광주광역시교육청도 월곡2동 인근에 위치한 송정도서관을 ‘송정다가치문화도서관’으로 개편하는 등 다문화사회 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송정도서관이 고려인 집거지 인근에 위치한 특성을 고려해 독서·문화 활동 중심의 도서관 기능을 다문화교육 분야까지 확대 한 것이다.

호남대학교는 고려인마을과 함께 공동 창제작해 뮤지컬 ‘나는 고려인이다’를 카자흐스탄과 키르키즈스탄에서 두 차례 무대에 올려 광주 고려인사회와 고려인을 매개로 한 글로벌 광주 방향을 제시했다. 호남대의 중앙아시아 현지 공연은 지역의 대학이 지역의 자산을 활용해 국제적인 문화콘텐츠를 발굴한 것이어서 많은 시사점을 줬다.

지역사회 시민사회단체는 고려인 정착 지원을 뒷받침했다.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사)고려인마을, 광주시자원봉사센터, 전남매일과 함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피해 고려인 난민을 위한 4자 공동협약을 체결,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한 모금 캠페인에 나섰다.

또 광주YWCA는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광주천 일대에서‘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돕기 평화걷기대회’를 개최하는 등 고려인 정착 지원 붐 조성에 나섰다.
 

광주 광산구 월곡동 다모아어린이공원에서 세워진 홍범도 장군 흉상. 홍범도 장군은 고려인으로 일제 강점기 연해주 등에서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고려인사회 자생 노력

지역사회의 다각적인 정착 지원 활동에 힘입어 고려인사회 역시 자생 노력을 기울였다. 광주에는 광산구 월곡동과 인근에 7천여명의 고려인 집거지가 형성돼 있다. 이들은 (사)고려인마을을 중심으로 자율방범단과 깔끄미 청소사단, 어린이합창단 운영 등을 통해 지역사회 일원으로서 역할을 하고자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월곡고려인문화관 ‘결’을 중심으로 고려인의 삶과 문화, 역사를 집대성하는 데 남다른 노력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5월 개관한 월곡고려인문화관에는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고려인의 삶과 역사 등을 기록한 수많은 유산들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홍범도·김경천 등 고려인의 항일무장독립운동 자료들도 다수 간직하고 있다. 광주고려인사회는 월곡고려인문화관을 중심으로 국내외 고려인사회의 삶과 역사, 문화를 집대성할 계획이다. 올해 8월 15일 홍범도 장군 흉상 제막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여기에 중앙아시아 현지 국가에서 이어 온 고려인전통연희와 문화예술을 계승하기 위한 ‘고려예술종합학교’ 와 ‘빅토르최 예술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광주를 국내외 고려인 사회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목표에서 출발한다. 고려인사회를 매개로 한 세계 55만 디아스포라 고려인의 교육·문화·예술 허브 도시다.

고려인마을은 내년 5월 20일 세계인의 날을 전후로 광주에서 전 세계 고려인단체들이 참여하는 ‘세계고려인단체총연합회’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나는 고려인이다’ 중앙아시아 공연단이 현지 고려인단체와 ‘세계고려인단체총연합회’ 결성에 공감하며 ‘우리는 하나입니다’ 챌린지를 하는 모습./김명식 기자

◇세계고려인사회 허브 추진

이를 위해 지난 9월 총연합회 결성 선포식을 가진데 이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등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등서 활동중인 고려인단체들을 대상으로 공감대 형성에 나서고 있다.

지난 10월 ‘나는 고려인이다’ 뮤지컬을 중앙아시아 공연도 세계고려인단체총연합회 출범을 위한 포석 차원이었다. 계획대로 세계고려인단체총연합회가 출범하면, 광주는 명실공히 국내외 고려인사회 중심지가 될 토대를 닦게 될 전망이다.

고려인이 오면서 광주의 역사는 깊어지고, 미래는 밝아지고 있는 것이다. 고려인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할아버지 땅을 찾아온 사람’을 넘어 광주의 미래를 밝게 해주는 희망 전도사인 셈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난민이 올 한 해 광주에 던져준 가장 큰 화두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광주시민들의 따뜻한 환대로 조상의 땅을 찾아 광주에 온 고려인들이 희망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현재 고려인마을에서 추진중인 다양한 사업은 고려인들의 국내 정착 사업의 연장이다”며 “우리를 따뜻히 받아준 광주를 위해서 고려인의 삶과 역사, 문화를 광주에 끌어모으고, 국내외 사회를 모두 아우르는 단체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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