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중(법무법인 강율 대표변호사)

 

강신중 법무법인 강율 대표변호사

한해를 마무리짓는 12월은 자연스레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TV 드라마를 즐겨보지는 않지만 금년 한 해 TV 시리즈의 트렌드는 법정물의 유행이었다.

2022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검사와 변호사들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왜 오수재인가’, ‘닥터 로이어’, ‘빅마우스’, ‘법대로 사랑하라’ 등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법정물의 유행은 일상에서 불평등, 혐오, 증오, 차별을 경험한 대중의 정서와 맞아떨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지난 여름 ‘우영우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경우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사례가 실제 사건에 기초하고 있는데, 쌍방의 주장과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냉정한 법의 적용보다는 따스한 가슴으로 접근하는 변호사에게 대중들이 공감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기존 법정 드라마와는 차별화된 신선함이 있었다. 우선 주인공이 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회적 약자에 속했다. 법정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인 변호사가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 싸우는 ‘영웅’들인데 비하여, 우영우는 로스쿨을 수석 졸업했음에도 취업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사회적 약자였다. 아버지와 절친인 법대 후배가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에서 겨우 계약직 자리를 얻은 이후에도 회사 현관의 회전문을 출입하는 일부터 힘겨워하는 신참 변호사였다.

변호사라는 직업에 필요한 것은 법률 지식뿐만 아니라 소송을 의뢰한 고객들, 그리고 동료 변호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도 포함된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가 존재하기 어렵다.

결국 우영우와 같은 변호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이긴 하지만 드라마 안의 우영우는 자신의 장애를 숨기지 않고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편견과 맞서는 용감한 변호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영우는 첫 재판의 모두진술에서 “양해 말씀드립니다. 저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어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어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을 사랑하고 피고인을 존중하는 마음만은 여느 변호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떳떳하게 이야기한다.

이 드라마가 주는 신선한 점은 기존 법정물이 주로 형사재판을 소재로 한 것과 달리 ‘민사 사안’을 다룬다는 점이다. 형사사건을 소재로 한 드라마의 경우 주인공이 변호하는 피고인이 진범인가에 집중하는 범죄 드라마의 성격이 부각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사회문제나 휴머니즘은 놓치기 쉽다.

드라마의 첫 회에서 70대 할머니가 남편의 이마를 다리미로 때려서 남편이 뇌출혈로 입원한 사건에서 우 변호사는 남편을 다리미로 때렸을 때 정말로 남편을 죽이고 싶었던 마음이 들었는지를 할머니에게 묻는다.

“죽일 마음이었다면 살인미수죄, 다치게 할 마음이었다면 상해죄, 좀 때려줄 마음이었다면 폭행죄, 그냥 실수였다면 과실 치상죄입니다.”

이어서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대사가 등장한다.

“법은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마음에 따라 죄명이 바뀝니다. 사람의 마음은 정말 어렵습니다. 저라면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잘 때 그 사람 눈이 부실까 봐 커튼을 쳐 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소리에 깰까 봐 조심하면서요. 그런 건 죽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행동 아닙니까?”

드라마 속에서 우 변호사는 악전고투 속에 재판들을 이겨나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는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마지막 회에서야 겨우 계약직을 벗어나 정규직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새롭게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그가 지닌 장애가 극복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를 향한 편견의 강도는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역학자인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김승섭 교수가 번역한 킴 닐슨의 ‘장애의 역사’에 ‘의존은 모든 인간의 삶 한가운데 존재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공동체의 목표는 독립이 아닌 상호 의존이라는 의미이고, 우영우가 우리 안의 그 상호의존성을 일깨워 주었다.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법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의뢰인들의 고민에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우영우’들이 많아지길 기대하고, 특히 새롭게 출발하는 젊은 변호사들이 의뢰인의 말을 진심으로 경청하고 소통하며 그들의 권리를 대변해주고 한을 풀어줄 수 있기를 바라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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