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광(광주시교육청 장학관, 교육학 박사)

최성광 광주시교육청 장학관·교육학 박사

당신의 몸에는 어떤 상처가 있는가? 어느 부위에 있는 상처이며, 언제 무엇을 하다가 생긴 상처인가? 잠시 그 상처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라!

상처는 생의 기록이다. 모든 사람은 살면서 상처를 입는다.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는 몸과 마음에 아픔을 남기며 상처가 된다. 상처를 볼 때마다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아팠는지 그때의 상황이 그려진다. 그래서 상처에는 삶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상처는 우리 몸에 흔적을 남긴 채 사는 내내 그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몸의 상처는 서사(敍事)이다. 우리가 살아 온 일련의 사건들을 몸은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가 살아온 시간과 공간, 사고와 행위의 결과를 몸은 알고 있다. 요리사가 칼을 다루다 생기는 손의 흉터, 소방관이 불을 끄다 남긴 크고 작은 화상, 조폭이 싸우다 생긴 몸 구석구석의 칼집 등 모든 사람은 자신의 서사를 몸에 담고 있다.

반면 상처 속에 담긴 이야기는 서정(抒情)이다. 상처가 생기던 그때의 상황은 행위를 감싸고 있는 하나의 감정과 느낌의 덩어리 그 자체로 기억된다. 요리사 손에 난 수많은 상처는 최고의 요리를 꿈꾸며 양파를 썰다 생겼을 테고, 소방관 등에 난 화상은 불이 난 건물이 곧 무너지는 절체절명의 순간 목숨을 걸고 홀로 남겨진 한 할머니를 구하다 생겼을 것이다. 몸의 주인은 자신이 지닌 상처를 보며 그때의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한다.

내 몸에도 여러 상처가 있다. 그 중 훈장처럼 생각하며 당시의 기억을 되새김하는 상처가 왼쪽 손목에 가늘게 남아 있다.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으며 공부만 하고 살아왔던 내게 첫 번째 대입 실패와 이후 교육대학 입학은 그동안 내 삶과 정체성에 큰 혼란을 불러왔다. 소위 모범생으로 살아 온 나는 자신의 경계를 깨고 싶은 욕구로 뒤늦은 사춘기를 보내며 가죽자켓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며 거친 남성성을 과시했었다. 대학 2학년, 연둣빛 잎들이 녹음으로 변해가던 5월 어느 밤 나는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고 피투성이가 된 채 몸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겼다. 이후 수년에 걸친 흉터 제거 수술로 대부분 상처는 사라졌지만 왼쪽 손목에 가는 실 두께의 짧은 흉터는 사라지지 않고 그날의 기억을 지금까지도 몸에 담고 있다.

이후 나는 20여 년을 연구자로서 교사로 살면서 안정되지만 규격화된 삶을 살고 있다. 가끔 틀에 박힌 일상이 지겨울 때면 손목에 남은 상처를 어루만진다. 스무 살 풋내나던 청춘이었지만 뜨거운 열정과 주체할 수 없던 에너지로 삶의 지경을 넓히고자 했던 그 시절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토대가 되었다. 비록 아픔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스무 살의 상처가 아니었다면 내 인생은 지금보다 훨씬 무미건조했을 것이며, 연구와 일과 삶의 확장성도 부족했을 것이다.

모든 상처가 그러하다. 당시에는 아프고 쓰리지만 상처를 입는 동안 배우고 느끼고 쌓이는 경험과 느낌과 감정은 삶을 더 풍부하게 한다. 우리의 삶도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성장하면서 넘어지고 다친다. 어릴 때 자전거를 배우며 수십 번 넘어져 무릎이 깨지고 상처가 나지만, 이후 자전거를 타며 느끼는 시원한 바람과 아름다운 풍경은 성공경험이 되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상처가 남아도 괜찮다. 넘어져도 괜찮다. 모든 사람들에게 상처는 아픔이자 풍성한 생의 감각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꿈과 원하는 것에 대한 열정으로 삶을 사는 것에 주저하지 말자. 이제 당신의 몸과 마음에 있는 상처를 어루만지며 서정의 이야기를 다시 만들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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