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용석(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장)

호남에 세밑 폭설이 내렸다. 도시에 내리는 눈은 반가움보다 불편함이 더 큰 법인데 한방울의 물도 아쉬운 상황이니 기쁨과 반가움이 불편을 앞선다. 어떻게든 희망을 보려는 우리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시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시작된다. 많은 일들이 우리를 절망하게 하고 이 터널의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정치는 여전히 국민에게 평온보다는 절망을 주고 우리를 대리해서 일하는 정치인들은 자신의 자리와 현재의 권력을 지키는 것이 시민보다 우선으로 보여진다.

내년을 전망하는 많은 기사와 전문가들의 예측이 암울하기만 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 삼성이 비상경영을 선언했다. 많은 대기업들이 당연히 뒤를 따른다. 이렇게 되면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옷깃을 세우고 내복도 두껍게 껴입으면서 매서운 칼바람을 피할 준비를 해야 한다. 대기업들이 긴축을 시작하면 즉시 관련 중소기업들에게 납품단가 압박과 비용 압박이 시작될 것이고, 연쇄적으로 경기 전반이 심하게 위축된다. 관련 기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의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지갑은 다시 닫힌다. 자영업자들은 물론 코로나 때 호황을 누렸던 일부 업종마저 예상치 못한 불황을 실감하게 된다. 거기에 금리가 올랐고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물가까지 오르니 이중으로 서민의 삶은 팍팍해 진다. 늘 다정했던 은행은 상환을 독촉하고 희망퇴직이 시작된 회사에 근무하는 분들은 평생 일터같던 내 삶의 터전이 순식간에 지옥같은 곳이 된다. 함께 일하던 상사의 “차 한잔 하자”는 인사말도 저승사자의 호출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런 시절은 사람들의 마음도 타인에 대해 따뜻함과 평온함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된다. 김난도 교수는 일찍이 이런사회 모습을 정의한 적이 있다.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기운이 도처에 커져가고 있다. 우리 사회가 ‘히스테리의 도시(City of hysterie)’, 즉 날선 사람들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 “누군가 건드리면 찔러버릴 듯한 ‘고슴도치’같이 날이 서 있으며 불확실성과 경쟁, 상시 위험의 사회가 모두를 예민하게 만들고 있다” 고 했다. 저는 이런 주장과 정의가 특정한 해의 트랜드가 아니고 우리 사회의 전형으로 굳어갈 것 같아서 두려운 마음까지 든다.

우리는 이런 시절을 수없이 겪고 경험했다. 그래서 안다. 어려운 상황이 되면 믿을 곳은 스스로와 가족, 그리고 바람보다 먼저 눕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잡초같은 우리 민초들 뿐이라고…. 그 억센 뿌리들이 촘촘하게 얽혀서 대지를 움켜쥐고 땅과 함께 이겨내 왔음을…

그러니 새해에는 단단하게 마음을 먹고 버티기와 희망찾기에 나서기를 제안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저는 마음 속에 울타리를 만들기를 권하고 싶다. 그 울타리 안에 누구든지 초대해 보시기 바란다. 가족은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가까운 친구도 있으면 좋겠다. 어려운 시절에 함께 마음을 터놓고 기대고 위로하고 위로받는 사람들이 모이는 울타리를 만들고 그 울타리 안에서 내 마음의 평온이 유지되고 따스한 기운을 지켜내자.

두 번째는 내 마음이 평온해 지는 공간을 갖기를 권하고 싶다. 내가 힘들 때 어머니 품처럼 따뜻한 곳이 있으면 위로가 된다. 나만의 공간이어도 좋고 내가 찾은 소소한 찻집이어도 좋다. 스페인 투우장에는 투우사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몸을 피하는 공간이 있다. 케렌시아(Querencia)다. 저의 케렌시아는 완도 고금도에 있는 수효사다. 이 외지고 작은 절에 있는 특별한 부처님이 위로가 되고 힘이 나게 해 준다(지난 3월 3일자 이 칼럼에서 소개). 이렇게 지켜낸 각자의 따뜻한 마음들이 모이면 우리 사회도 따스해 지고 어려운 시기도 이겨내리라고 믿는다. 희망과 따스함이 불씨처럼 살아 이어지는 새해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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