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가 말한다 ‘나를 사랑하고 혁신해야 가치를 만든다’

프리드리히 니체(1844.10~ 1900.8)는 독일의 철학자로, 서구 합리주의 철학의 전통을 깬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자다. 이 땅에서의 삶을 사랑할 것을 주장하며 현실에서의 삶을 비방하는 자를 경멸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그의 대표적 저서다. 시인 차라투스트라가 10년 동안 머물던 산속 동굴에서 나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펼치는 내용으로 초인사상, 영원회귀, 권력에의 의지를 통해서 대지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책의 구절을 통해 그의 생각을 엿보자.‘한 방울의 이슬에도 몸을 떠는 장미 한 송이와 우리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그렇다. 우리는 삶에 친숙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데 친숙하기에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산속에 은둔하며 좋은 삶을 노래하는 시인이 마을로 내려와 이야기한다.

“우리가 복 받는 행위를 해서 천국에 가는 게 아닙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을 베풀면 이 땅이 곧 천국이죠. 사람들은 우리가 딛고 있는 대지와 그 속에서의 삶이 무겁다고 말하죠. 사랑하세요. 그게 해법입니다. 사랑하면 달라질 것입니다.”

한 여인이 그에게 관심 있다는 표정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녀는 사랑이 메마른 세상에 아파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아픈 기억에 몸서리쳤다.

“사랑은 소유욕이나 상대방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욕망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올곧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아미(ARMY) 굿즈를 들고 계시네요. 방탄소년단(BTS)이 이 마을까지 덮쳤으니 한류가 상당하네요.”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저는 방탄소년단을 사랑합니다. ‘나의 우주(My Universe)’라는 노래를 들어보세요. 시공과 민족을 초월한 우주의 사랑을 말합니다. 인류애 말이죠.”

시인은 여인에게 연예인을 숭배하는 건 자신을 노예로 만드는 행위라고 했다. 정치인은 인류애를 포장해 선동한다고 했다.

“마을에 내려와 보니 연예인에게 완전히 빠져 있는 이들이 많아요. 그건 진정한 사랑과 거리가 멉니다. 참다운 사랑은 자기애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경제학 원리도 이기심에서 출발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잖아요, 애덤 스미스라고요.”

여인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그런 이기심은 개에게나 주라고 시인에게 항의했다. 시인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나오는 말을 들려준다.

“우리가 매일 식사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천성에는 상반되는 몇 가지가 존재한다고 봤다. 이타심으로 인간은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진다. 시인은 타인의 운명에 대해서 선을 긋기에 그의 생각은 애덤 스미스의 철학과는 차이가 있다.

“초월해야 할 대상은 이 땅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어야 합니다. 대다수 사람은 삶의 가치를 외부에서 찾죠. 줏대 없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어떤 생각으로 사는지 눈치를 보죠. 이런 행태는 극복돼야 하니, 자기에 집중하세요. 초인은 영화 속 슈퍼맨이 아니라 자신을 넘어선 자(위버멘슈·Ubermensch)입니다.”

시인이 말한 초인은 사랑, 창조, 동경에 기초해서 자신의 눈높이보다 훨씬 위에 존재하는 이상을 바라본다. 끝없이 자신을 뛰어넘으려 하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타인을 따라 하는 삶은 필연적으로 세속적 가치를 추구합니다. 사람은 눈앞의 이익에만 눈을 돌려 독파리 같아집니다. 타인을 연민하고 동정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이 부분에서 내 생각은 애덤 스미스와 다릅니다. 연민에 빠진 사람은 고통을 삶의 재앙으로 여겨요. 다른 사람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벌벌 떠는 사람은 유약해서 초인이 될 수 없어요. 우리는 약자에 대한 연민과 허약함을 버리고 고통과 위험을 무릅쓰고 주체적인 강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회가 강요하는 끝없는 경쟁 속에서 사람들은 강요된 자기계발에 매진한다. 혹자는 이러한 현상을 신자유주의의 희생으로 표현한다. 한평생 정직함을 미덕이라 보고 살아왔는데 가난이 숨통을 조여 오면 세상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여인이 공허함을 토로한다.

“세상살이가 어려워요. 이 미친 세상을 현명하게 살기 위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시인은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3단계 이야기를 들려주며 각 단계를 넘어서야 어려운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1단계인 낙타는 언제나 등에 짐을 짊어지고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명령에 순응한다. 나에게 무거운 짐은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2단계인 사자는 날카로운 발톱과 강인한 이빨로 장애물을 파괴하는 존재다. 자유의지로 자신에게 명령할 힘을 지닌다. 부정과 파괴의 단계로, 자신이 뭘 원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3단계인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하며 순간순간을 쉽게 잊기도 하지만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실행하는 존재다. 시인이 말한다.

“세상에는 당신을 업고 강을 건너게 해주는 무수한 오솔길과 다리가 있죠. 그런 것에 유혹되면 자기 자신을 잃게 될 수 있어요. 우리는 3단계 어린아이처럼 살아야 합니다.”

시인은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말하는 혁신도 어린아이의 눈을 닮아야 한다고 말하며, 자신은 애덤 스미스보다 조지프 슘페터를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혁신이란 단어가 마음에 듭니다. 새로움은 옛것의 도태과정이죠. 역마차를 연결한다고 기차가 만들어지지 않죠. 철도와 기차를 만든 사람은 역마차의 주인이 아닌 익숙한 관행에서 이탈한 사람입니다. 미련이 새로운 방향을 향한 인간 의지의 발목을 잡습니다. 불황일수록 낡은 걸 파괴하고 새로운 걸 만드는 창조적 파괴가 더 요구되죠.”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려면 자기실현을 이루려는 의지와 어린아이의 때 묻지 않은 창조행위가 어울려야 한다. 그게 혁신의 동인이다. 기업가의 혁신 정신이 퇴보하면 경제는 하락과 불황의 길로 접어든다는 슘페터의 생각과 니체의 사고는 닮았다. 시인은 슘페터의 생각을 요약한다.

“창조적 기업가는 ‘(꿈+재능+에너지+즐거움)×자기다움’을 갖춘 이로 정의할 수 있죠.”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난다. 시인은 다른 이와도 이야기를 나눴지만 타인의 속물적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서 외면받고는 한숨을 쉬며 높은 산속 동굴로 되돌아간다. 그는 동물들을 불러놓고 자신이 본 드라마 얘기를 한다.

“마을에서 ‘재벌집 막내아들’이란 드라마가 인기가 있었는데 내용이 내 사상과 너무 달라. 재벌집에 희생된 머슴처럼 부려진 직원이 재벌집 손자로 환생해 복수하는 이야기야. 반재벌 정서, 권력형 인물, 정치 얘기를 다루며 사람들이 통쾌해해. 윤회한 인물이 미래에 펼쳐질 일을 다 알고 주식투자를 해 돈을 벌지. 그런 초능력을 지닌 인물은 운명을 개척하는 자가 아니야. 작가는 윤회의 힘으로 나약한 인간을 슈퍼맨으로 만든 거야. 대중은 드라마 이야기니 좋아할지 모르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야. 모르는 과정에서 삶을 개척해야 그게 진정한 삶이지.”

사슴이 뿔을 쫑긋 세우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시인님도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des Gleichen)를 이야기하잖아요.”

“아직도 사슴은 내 이야기를 모르겠나요? 내가 말하는 영원회귀란 세상과 그 속의 모든 사물이 반복해서 존재한다는 뜻이기는 하지만 흐름이 반복되는 순환론적 세계관과는 달라요.”

“그 어려운 단어를 꺼낸 의도를 정확히 모르겠어요.”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했을 때 사슴은 그걸 받아들일 수 있나요? 영원회귀는 결국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지, 긍정하지 않는지를 판단하는 척도예요. 존재하는 것은 오직 힘이고, 사물은 그 힘의 발현이라고 보면 되는 거예요.”

결국 시인에게 존재는 생성의 의미다. 모두가 힘이나 권력에의 의지(Will to power)를 갖고 새로움을 만들어 멋진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 세상은 수많은 권력에의 의지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서로 경쟁한다. 나라는 존재도 그 속에서 계속 변화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같지 않고 생성과 권력에의 의지가 있어 바뀐다. 시인이 사슴에게 설명해준다.

“자본주의의 희생양이 환생해 재벌집을 쳐부수는 행위가 통쾌할 수 있지만 그 같은 윤회 이야기는 싫어해요.”

“그럼 영원회귀 속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사슴 양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가도록! 사랑을 간직한 채 창조하면서 혼자 가도록! 사람들이 자네를 공정하게 대우해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말도록!”

“시인님. 너무 힘든 세상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야 한다고요?”

“사슴의 뿔처럼 혼자 가도록. 세상은 생성의 원리로 계속 변화해요. 삶이 영원히 반복돼도 그 삶을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서 나오는 거죠. 세상에 의미 없는 순간은 없어요. 반복되는 생이 허무하다는데 그건 내 사상을 잘못 이해한 거죠. 나는 허무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을 경계해요. 삶의 절대적 긍정을 영원회귀로 말했고, 힘차게 살아가자 했죠.”

시인은 슘페터를 닮은 혁신의 아이콘으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들었다. 그는 애플 창업자이자 스마트폰을 있게 한 주인공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관찰한 인물로, 세속적인 것을 멀리하고 고요한 분위기에서 고정된 틀에 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변화무쌍함’을 추구했다. 시인은 그의 삶이 어디에선가 누군가에 의해 권력에의 의지로 생성되고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권력은 힘이지만 악한 게 아니죠. 권력은 생명의 근원이죠. 모든 만물은 권력에의 의지가 있어요. 권력이 정치에 호도되는 게 문제죠. 진정한 권력자는 사랑할 줄 아는 자이고, 권력을 갖고도 시기와 질투하지 않아요. 권력은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이자 동인입니다.”

새해가 밝았다. 시인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가꾸는 법을 더 배우겠다고 결심하고 마을을 몰래 떠난다. 언젠가 권력에의 자유의지를 가진 많은 초인이 나타날 것을 기다리면서 산으로 돌아간다. 운명을 개척해 나가면서도 그 운명에 순응할 때 ‘아모르파티(Amor fati·네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노래가 의미 있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유물을 과대평가하는 현상을 ‘보유효과(endowment effect)’라고 했다. 시인은 물건이나 권력, 지위를 움켜잡으면 잃지 않으려는 사람의 속성을 생각해본다. 떠나보내고 난 뒤에 보유했을 때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편향(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기 자신은 언제나 떠날 수 없는 참 존재이기에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가치를 알고 힘차게 살아갈 때 사람들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처럼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게 조지프 슘페터의 파괴적 혁신과 연결되고 스티브 잡스의 발명품이 되며 리처드 세일러의 집착을 초월한 애장품이 된다. 모든 연결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생각의 의미를 연결하고 사회적 담론을 연결해 세상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새해에는 나부터 제대로 사랑해보자고 시인은 노래 부르며 춤춘다. 그 시인의 이름은 차라투스트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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